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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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휴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편이다.  성격상 정해진 시간과 루트에 따라 다니는 패키지보다는 자유여행족이다보니, 여행지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1) 치안상태, 2) 말이 통하는가, 3) 여행기간 대비 이동거리가(해외의 경우는 항공시간이 될 듯) 적절한가이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2박3일 또는 일주일 미만의 여행일 경우 주로 낙점되는 곳이 일본이다.  그러다보니, 아이와 함께 다니는 곳으로는 최근 몇년간 매년 일본만 4~5번은 되는 것 같다. 

 

도시에서 살며 또 도시로 떠나는 것이 싫어서 대부분의 경우는 시골 구석진 곳으로 찾아가서 기차로 이동하며 자연풍광과 트래킹, 온천을 즐기고 온다.  간혹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서 대도시로 갈 경우에는 아이를 위해서는 딱 미국산 놀이동산이,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서는 서점이 목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도시 안에서는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그 도심 안의 그림자처럼 잰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편이다.  그래도 간혹(그러니까 요즘 들어서는 좀 더 자주라고 해야하나) 극우세력들의 험악한 구호와 플랜카드들이 나부끼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특정국가의 "정부"를 좋아하지 않고 또 특정국가의 "국민성"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굳이 개인에 대한 혐오로 발산할 생각은 안 해봤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여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그런 수준의 무차별적 혐오와 증오를 대로변에서 쏟아내는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그 삶이 과연 만족스럽고 평안한 자들이었을까.  불특정다수에 대해 그런 정도의 증오를 쏟아내려면 본인들은 얼마나 굴곡지고 왜곡된 일생을 살아왔을까.  그런 생각에 미치면 오히려 그들이 안쓰러울 정도이고, 단지 그들로 인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재일교포들의 일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일본이란 국가의, 국민들에게 퍼져있는 특유의 무관심과 大勢에 대해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 하는 특성 상 저런 소리가 비록 크게 들리지만 그것이 그들 다수의 의견은 아닐 뿐더러 또 언젠가는 知性이 그 사회를 지배할 날이 돌아오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내 생각이 너무 안일했었나 싶다.

 

日本國人들의 특정국가나 민족에 대한 왜곡된 생각 또는 편협한 감상은 어쩌면 대도시에서 스피커를 켜고 검정색 밴을 몰며 험악한 욕설과 구호를 외치는 자들과 그 단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도 한 장 들고 시골마을을 슬슬 걸으며, "이 곳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 때 자전거를 끌고서라도 함께 걸어가며 길을 알려주는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낯선 이에게는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일상의 가르침을 실천하느라 마음 속의 혐오를 억지로 숨기고 있었던 이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日本國人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흐르는, 外國人이 그 언어를 좀 공부하고 책을 읽을 수준이 되었다고 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뿌리깊은 문화의 장벽을 보여준다.  증발하는 이유가, 그 사회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붕어빵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었을 때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어서 또는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는 잉여인간이 되는 것이 싫어서 나온 길을 그대로 걸어서 떠나버린 자들이 이 책에서 든 예의 절반 이상이란 부분.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 同流의 행렬에서 이탈했을 때의 충격은 자신의 삶을 통채로 부정해버릴 정도의 무게로 다가온다는 것.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과는 달리, 일본의 제국주의는 한 시대의 지도자가 집단광기를 이용해서 誤導해서 끌고 간 선택이 아닌, 그 나라사람들의 피 속에 흐르는 유전형질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글을 읽는 내내, 행렬의 한 부분도 흐트러짐없이 똑같은 속도로 행진하며 똑같은 각도로 팔을 들어올려 경례를 하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과시용인 대규모 군단행렬이 떠올라 섬뜩할 정도였다.  지금의 日本國人들은 정신적으로 그런 행진을 쉬지않고 해온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모르게 세뇌된 그들은 무엇인가 비난해야할 상대를 찾고싶을 때 그 자리에 적절한 대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북한이다.  일본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납북자들은 17명.  물론 그보다 조금은 더 많을지 몰라도 日本國人들 중 "인간증발"로 가족을 잃어버린 자들 중에서는 그 가족의 자발적 증발로 남은 자신들이 패배자이자 도망자의 가족이란 굴레를 덮어쓰는게 싫은 나머지 북한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수천명이란다.  그러니까 정부의 발표와 달리 그 가족에 의하여, 북한에 납북되어서 자국에서 증발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되어지는 도망자들이 수천명이란 얘기이다.  그리고 그 한 예로 나온 도망자가 실종 당시 20대 초반의 키 178, 몸무게 77~8킬로그램의 권투를 프로급으로 했던 건장한 청년이었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북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길에서 산책하는 자들을 끌고가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물색할 때 북한땅 안에서 재생산의 여력이 되며 저항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10대 여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또는 특정기술이 필요할 경우-가령 엔지니어나 교사 등- 특정직업군을 선택해서 성인을 납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로 한 때 권투로 시합에까지 나섰던 2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의 청년을?  그 가족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그 청년의 효용가치 대비 위험도가 현격히 높아지는 그런 대상을 굳이 고생해서 끌고 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그 가족들은 이미 자신들의 가설이 진실인 양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아버지는 북한을 상대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서 어떻게든 전파를 송신하려고 8년여 째 애쓰고 있단 부분, 그렇게 믿는 자들끼리 함께 만든 단체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힘껏 활동중이란 부분,  그리고 그 청년이 어째서 북한의 타겟이 되었을까요 하는 질문에 전에 살던 곳이 "한인타운" 근처라서 거기서 잘못된 만남이 있었을 거라 망설임없이 대답한 부분을 읽으며..  정말 이들의 비겁함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탄식하게 만들었다.

 

일본이란 나라 안에서 日本國人들끼리 만들어낸 同流라는 虛像에서 낙오된 자들은 그 자만의 실패가 아닌 그 자를 배출해낸 가문과 가족의 수치가 된다.  그러니 남은 자들까지 또 다시 사회로부터 매도당하고 밑바닥에 갈아앉아있는 끈질긴 비웃음과 무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낙오자가 그 집안의 수치이자 실패에 대한 생생한 증거로 남아있으면 안 된다.  그들은 결코 자발적으로 증발을 선택해서는 안 되는 자들이었으며 차라리 자살을 할지언정 하루아침에 소식을 두절하고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남은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그 이유를, 즉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는 원인을 찾아 제공하고자 애쓴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북한이란 카드인 것이다.  그 나라의 폐쇄성과 지구 위에서 인정받는 공공연한 깡패국가란 점이 이 때만큼은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할 뿐이다.  글을 읽다보면 실제 활자가 씌여있는 검은 부분보다 그 사이에 남아있는 흰 종이 부분, 즉 行間에서 더 많은 것이 읽혀질 때가 있다.  자신들의 수치심, 자괴감을 덮기 위해서 악착같이 붙든 한 올의 지푸라기가 그렇게 그 나라 안에서 뿌리를 박고 자라나 그 곳에 살고 있는 또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로 일상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다가올지언정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집단"에서의 이탈은 결코 본인들의 의지가 아니라고 주변에게 부르짖어야만 하는 그 이기심, 그 무지함.  그것들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불쾌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사고방식이 아닌 것처럼 또한 결코 몇백년 안에 풀어질 편협함도 아니란 것이 이해됨과 동시에, 과연 이 나라가 어린이와 여자로 구성된 우리 母子에게 안전한 나라라고 내가 분류해도 되는 곳일까 하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 다가온 또 한가지의 사실.  토요타의 재건에서 부럽게 바라봤던 그 "토요티즘"이 사실은 전체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 포장된 개념이고 그로 인해 개개인의 직원들은 개별적 인격이 말살되며 회사의 한 부품으로 재개발되어 사용되고 버려진다는 내용.  "좋은 직원은 사장(회사도 아니다!)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세뇌시키고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을 구성함이 그 성장동력의 원천이었다는 내용.  "토요타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라는 구절.  나 역시 전에 읽었던 책에서 감탄을 금치 못 했던 그 성공의 뒤에는 이런 개성말살과 집단화 시스템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나니, 日本國人은 그 나라에 태어나고 그 나라에서 성장함으로써 태생적으로 전체주의자, 또는 그 旗幟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제국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因子를 몸 속에 낙인처럼 갖고 사는구나 싶어 솔직히 충격이었다.  물론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 마냥 음지와 양지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쪽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日本國人의 속성이 감탄과 경이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실험과 연구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보다 日本國人이란 사람들에 대해 나 역시 저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왜곡된 또는 안일한 생각을 벗어버리게 해준 것으로는 고마우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大義도 없이 그저 증발된 자들 또는 그 자들의 주변인들을 인터뷰해서 올린 수준의 책 구성은 솔직히 프로라기보다는 아마추어급 저술인지라 이 책 자체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줄 수가 없다.  다만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읽어나가며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이 상당히 놀라왔던지라 그런 부분을 깨우쳐준 것에 대해서는 별 2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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