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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벼르다가 읽었다. 사놓고 언젠가는 읽고 싶은데 괜히 내용이 심각하고 읽다보면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에 책장 한구석에 밀어넣고는 계속 외면했었더랬다. 그래도 계속 가볍게 읽을 만화류를 섭렵하고, 내 공부(?)할 요량으로 아이의 초등준비 관련 정보서적들을 접하며 메모하고, 음울한 현대사회가 하늘에서 혼자 뚝 떨어진 것은 아니란 내용의 다독이는 산문류들을 읽다보면 조금은 심각한 것 같아도 내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접해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소설이지만 내용에 나오는 제왕의 탄생과 일생, 한 국가의 몰락은 결코 새삼스러울 것 없는 현실 속의 과거 여러 왕조들의 내용이 섞여나온다. 난 영화 "베테랑"을 안 봤는데 그 영화를 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주인공의 면면을 설명해주기 위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정말 저런 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한 얘기들이 많았다고 했다. 궁금해서 얘기해달라고 하니 몇가지를 추려서 말해주는데 나처럼 남의 인생에 관심없는 사람도 쉽게 일반 신문지상에서 접해본 다양한 집안의 다양한 2, 3세들의 행패들이 영화 속의 주인공 한 명의 행동으로 녹아들어가서 화면에 펼쳐진 내용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아 그거? 어느 기업의 누구 얘기네, 현실에서는 이랬었대" 하며 깔깔거리며 한참 수다를 떨게 되었지만. 그처럼 이 책도 읽다보면 소설 속의 주인공 한 명의 일생을 통해서 과거 실제로 살다 간 수많은 중국의 제왕들과 이 땅의 제왕들의 삶이 오버랩되어 함께 스쳐지나가는 걸 알 수 있다.
일국의 왕이 急逝를 한다. 후계자를 정하는 일에 있어서 존재감을 떨칠 수 있는 위치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에 누수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대적으로 무능하거나 어린 황손(또는 왕손)을 찾아 추천한다.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게 밀실 안에서 적당히 결정된 꼭두각시 제왕은 이렇게 탄생한다. 그리고 수렴첨정이나 권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타고난 천성에 상관없이 새로운 제왕의 치세는 몇몇 권력자들의 기쁨을 위해 백성을 쥐어짜는 세태로 나타나고 그로 인해 나라 안은 어지러워진다. 견디다 못 한 민초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쯤에는 보통 국경 밖도 소란스러워지고 내우외환이 겹친 나라는, 제왕이 쫓겨나거나 또는 그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선왕의 急逝로 인해 후계자를 정할 때 종친회에서 선왕의 적통과 멀지 않은 친척 중 가장 나이어린 아이를 왕으로 내세워 (중국의 경우)태후나 (조선의 경우)대왕대비가 멋대로 국정을 주물러 터트리려고 한 예는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나 조선 성종조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또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라갔다가 결국 망국의 왕이 된 이로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고, 의지를 갖고 한 번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권력의 정점에 있던 태후와의 정치경쟁에서 져서 죽음으로 끝나는 경우는 한나라 초기의 황제들이나 청나라 광서제가 생각나고, "못 살겠다 갈아엎자" 하고 민초들의 반란봉기의 모습에서는 나중에 명나라를 건국하게 된 태조 주원장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살기등등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신나게 제왕놀이에 빠진 임금을 갈아엎자고 나선 이로는 연산군 폐위에 앞장선 신하들이나 또는 중종과 달리 적극적으로 선왕(광해군)의 폐위에 나선 인조가 연상되기도 한다. 선왕의 장례에 총애받던 후궁들을 강제로 순장시키거나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둔갑시키고 분을 풀어대는 모습은 한나라의 여태후를 떠올려도 좋을 것이고, 나라를 통채로 손 안에 넣고 긴 지팡이 끝으로 황제를 통해 직접 통치까지 나선 이로는 당나라의 측천무후를 떠올려도 무방할 것이다. 망국의 순간에 불에 탄 궁궐 안에서 잿더미로 화한 상태로 처절하게 스러져간 제왕으로는 후에 영락제가 된 삼촌에게 쫓겨 달아났는지 아니면 스러졌는지 알 길조차 없었던 명나라의 2대황제 건문제나 또는 같은 왕조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황제의 죽음에 후궁들을 차례로 교살하여 순장시키는 경우는.. 글쎄 엄청 많았겠지만 내 경우에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 때문에 그런가, 명의 영락제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에서 아버지가 왕위에 있을 때 적장자로 태어나 제대로 세자교육을 받고 순탄하게 왕위를 물려받아 요절하지 않고 끝까지 왕으로써 일생을 마친 이는 단 한 명, 숙종 뿐이라니 어쩌면 최고의 권력 정점에 앉는 "제위"라는 것은 원래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역사 속에서의 이런 행동들은 "그 결과 나라는..." 이렇게만 흘러갈 뿐 정작 그렇게 간택(?)되어 왕위에 올라선 이들의 마음 속이나 삶에 대해서는 의례 관심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 틈새를 꿰뚫어 "그렇게 꼭두각시로 열심히 내둘려진 그 아이는 어땠을까? 어린 나이에 허울 좋은 생사여탈권을 모두 쥔다는 장난감에 현혹되어 그저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자 했으나 사실은 매일 매일이 바로 자기자신이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생활의 연속이었던 그 아이는, 정말 하루 하루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버텨내고 어떻게 견뎌냈을까?"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의문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그러고보니 나 역시 궁금해졌다, 내 자리가 아닌데 주변의 다른 어른들의 당리당략으로 툭 굴러들어온 복인지 화인지 모를 그 지위가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아이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갔을까.
결론은, "지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였다. 소설의 주인공은, 결국 그 자리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단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그 동안 익숙해졌던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정적을 암살하고자 했고, 제왕으로서의 의무 중 하나였던 후손을 얻기 위한 일상생활 같은 공적 생활에서 일어나는 비빈들의 암투 속에서 누구는 취하고 누구는 버리며 자신의 안위를 추구해나간다. 놀이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 한 결과로 제 때에 당도하지 못 한 전장에선 처절한 패배를 맛보고, 어리석은 왕이라도 일국의 얼굴이기에 그를 지키고자 나선 충신들은 목숨으로 그 댓가를 치루고 그 결과의 처절한 고통은 백성들의 몫이 된다(이 부분은 꼭 병자호란 때의 인조가 떠오른다). 그래도 소설 속의 주인공은 운이 좋았다. 폐위가 되어도 조선조의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유배지에서 치욕 속에 생을 보내지도 않았고, 고려왕조의 마지막 왕손들 마냥 길거리에서 인간사냥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진시황의 자손들처럼 저잣거리의 구경거리로 고깃덩어리로 전락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보다는 원래 왕위계승자였던 이복형의 승자로서의 자신감과 어리고 용렬한 동생에 대한 무시로, 개처럼 기어서 살아서 궁 밖으로 나갈 기회를 얻었다.
폐서인으로 몸을 감추고 세상을 떠돌며 자유를 찾아 줄타기왕으로 거듭난 과거의 제왕은, 쫓겨난 왕에서 줄타기의 제왕으로 당당하게 경성으로 돌아간 길에서 결국 망국의 난을 겪고 만다. 이유는, 당당하고 유능하고 훌륭한 군인이자 정치인인 줄 알았던 이복형이 재위6년 만에 깔끔하게 나라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너무나 뛰어났기에 오히려 독선적이었던 그가 담당하기에는 나라의 앞날이 이미 너무 풍전등화였기 때문이었다. - 그러니까 제왕의 능력에 상관없이 기울어진 정세로는 돌이킬 길이 없어진 나라라면 누가 있을까. 아마 진시황의 손자이자 황제란 이름을 감당할 수 없는 정세에 다시 진왕으로 명명된 진영을 제1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진시황의 장손으로 사실 아주 똑똑했던 것 같은데 정말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밖에는.. 따지고 보면 호랑이 새끼는 다 호랑이라고, 史記에 나온 진시황의 자녀들을 보면 다 영웅호걸들이었다, 2세황제가 된 막내아들 호해만 빼놓고. 그러고보면 좋은 유전자와 엄청난 운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기운을 대대손손 더 길게 전해주지 못 한 진시황의 치명적이자 유일한 패인은 바로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식의 그릇 크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 한 어리석음이었다고 할까.. 또는 망국에 대한 아쉬움이겠지만, 기대를 품을 수 있는 황손이었는데 이미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국세 탓에 결국 황위 근처에도 못 가보고 이역땅에서 숨진 조선조의 마지막 황태자 이우라든가. - 사족이긴 하나 조선의 모든 왕손들은 이름이 외자였단 점. 아마 지고지순한 최고권력의 왕의 자손들에게 돌림자란 것을 부여하여 다른 왕족들과 같은 항렬에 넣는 것이 불손한 일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최근에 자치통감에서 접하고 뇌리에 선명하게 남은 後唐의 莊宗 이존욱이 어쩌면 섭국의 마지막 제왕, 단문의 현실 속 모델이었는지 모르겠다.
한 때는 황족의 가장 어린아이였던 단백, 권력을 탐하는 이들에 의하여 선왕의 뜻에 반하여 제왕으로 선택된 단백, 꼭두각시로 매일매일을 보내며 무료함에 놀이에 더 치중하게 되는 단백, 마음을 터놓을 이가 없어 환관과 가깝게 지내며 오히려 그를 통해 진정한 충신을 얻게되는 단백, 모자란 능력으로 결국 원래 제위계승자였던 이복형에게 쫓겨나며 자신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단백, 세상 속에 홀로 나섰을 때 그 실상에 잘 적응하지 못 하나 결국 가장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단백, 망국의 순간에 가진 모든 동료들을 다 잃어버리는 슬픔을 맛보는 단백,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잃어버리고 또한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과거의 스승을 찾아서 깊은 산중에 최후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단백. 한 사람의 일생으로 부귀영화부터 노숙하는 최하층까지 두루 섭렵하는 모습을 따라 함께 걸어가다보니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씁쓸함과 연민의 정이 몰려온다. 주변인들의 욕심에 의해 그가 선택되지 않았다면, 그의 일생과 그 나라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先王의 막내아들이자 現王의 막내동생으로 왕족으로 편하게 떵떵거리며 좋아하는 놀이나 하며 藩王으로 임명되어 어디 지방의 작은 지역 하나를 차지하고 편하고 평범하게 살아갔다면, 그리고 그의 재위기간 동안 위기 속에 점차 국력이 약해진 나라 대신 아직은 자주방어가 가능한 나라인 상태에서 유능한 그의 형이 왕이 되었다면, 그 많은 왕족들이 자결하고 칼에 찔리고 참수당함으로 삶을 마감하고, 또 그 나라가 그렇게 숱한 백성들의 시신을 넘고 불타오르는 검은 연기들을 넘어서야 하늘이 보이는 비극의 현장이 되었을까. 진시황과 2세황제의 폭정을 못 이겨 결국 난을 일으키며 외친 진승의 일성,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한 세상이 뒤엎어지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피와 희생이 있어야하니 이왕이면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씨에게 처음부터 물려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역사서를 접할 때마다 되풀이하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소설이지만 꼭 소설만 같지는 않은, 그래서 더 안타까우면서도 괜히 이런저런 생각에 더 잠기게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