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29 - 오대후량시대 자치통감 29
사마광 지음, 권중달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중1 때 김용의 영웅문을 읽고 중국문화에 덮인 중국역사물에 폭 빠지기 시작했더랬다.  그러다보니 실존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사마천의 사기를 처음 간략본으로 읽고나서 천여년의 시공을 넘어 그 인물들과 사건들이 마치 실사같이 묘사되어 나온 일화들에 '이런 세상이 있었나'하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마천의 사기 원본은 하나라도 그에 대한 역서는 다양하고, 원서도 간략본 한 권으로 추략되기에는 실로 방대한 양이란 것을 알고 또 다양한 역자들의 책으로 참 많이도 읽어봤다.  이제는 갖가지 제목으로 얼굴만 바꿔서 나온(하기사 역자들의 수준에 따라서 내용물도 마구 바뀌기는 하더라) <사기>역본들에 더 이상 흥미를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의 중국인사학자들의 역작물들에 대한 번역서들을 찾아읽으며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그 졸저에 대해 황당해하며(하긴 그 원서가 졸작인지 아니면 번역물이 졸작인지는 한문에 까막눈인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흘러흘러 몇 권은 훗날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소장품으로 놔두고 나머지는 다 중고서적으로 팔았었더랬다.  그러면서 매번 느낀 것은 번역자들의 수준이랄까...  이왕이면 앞으로 이런 책들은 가능하면 배경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차원의 언어유희에 능숙할 정도로 인문학에 밝은 견해와, 가을날 숲길을 산책하는 나그네의 머리 위로 뜬금없이 툭! 떨어지는 밤톨같은 깨방정 따위는 없는 진지한 문학자 또는 사학자가 번역한 번역서로 접해보고 싶다는 소원이 몽글몽글 솟아올랐었더랬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라딘 사이트에서 역사물들을 검색하며 역자들의 면면을 읽어가던 차에 권중달 교수에 대한 평을 읽었다.  권중달 교수의 역서라면 두 말 하지 않고 찾아 읽어도 된다는 무한신뢰의 글들을...  나름 궁금해져서 이미 교단에서는 은퇴하셨으나 학계의 원로학자로 활동 중인 그 분이 평소에 출간해둔 역서가 뭐가 있을까 하고 검색해보니 <자치통감> 군단이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시절 스쳐지나간 세계사 책 속에서 흘낏 나온 뒤 사라진, 자치통감의 원저자인 "사마광"이란 이름은 내게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 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자치통감이란 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얼마 전 케이블방송에서 본 "위황후"라는 중국드라마를 통해서 한무제와 위황후, 그리고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지켜줄 세력이 모두 스러진 뒤에는 필연적으로 정쟁에 희생되어 자살로 마감해야했던 위황후와 그녀의 유일한 아들이자 한무제의 장남이었던 여태자 집안, 결국 너무 장수한 황제에 (또는 위황후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너무 오래 살아서) 가려 안타깝게 죽은 壯年의 태자와 그로 인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한나라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 차라 "한무제의 전후"시기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검색했었다.  그랬더니 웬 걸.. 이 책에 기술된 역사가 전국시대로부터 秦-한-삼국시대-남북조-수-당-오대십국시대를 거쳐 무려 일천년을 넘는 세월동안 16개왕조를 담고 있었고 권중달 교수의 역서로만 총32권, 총서로 살 경우 80만원이 넘는 대단한 역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사마광의 생애를 보면 1019년에 태어나 1086년에 사망하였다니 지금으로부터 또 근 천년 전의 인물인데, 모든 것이 미흡한 그 시대에 어떻게 그 과거의 일들을 각국의 흩어진 역사사료들을 모아 꼼꼼히 다 기록하였으며 그렇게 기록된 책들이 다시 그 엄청난 시대적 변화를 거쳐서 또다시 천년을 살아남아 엉뚱한 나라(? 뭐 중국인 입장에서는..)의 뜬금없는 사람인(사마광이 처음 이 대작을 기술한 목적이 당시 입조하던 송나라의 황제를 위하여 국가경영기술을 깨우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니) 내가 읽게 된 것인지, 읽어나가면서도 스스로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차피 다 살 수는 없고 또 그렇게까지 읽을 것 같지는 않아서 몇 권만 흥미위주로 골라서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목차들을 검색해서 이왕이면 피바람이 난무했던 한말 이후나 당말 이후의 난세대 위주로 한두권씩 사보았다.  읽다보면 "이 사람 왜 이래?"하다가 그 앞권을 사보게 되고, 또는 "이 사람이 그 뒤에 어떻게 되었지?"하다보니 그 뒷권을 사보게 되고 해서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10권을 모으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낱권으로 사서 살살 모으는 것이 그래도 총서로 한 번에 구매하는 것보다 더 쌀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그렇게 읽다보니, 싸구려 감상 중 하나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이긴 했다.  단순히 일국의 왕이나 군주 정도가 아니라 소소하게 반란을 일으켰거나 나라를 망하게 한 간신들, 그 간신을 해치움으로써 또다시 권신으로 등극했다가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철퇴를 맞고 -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실제 일어나기도 한 공격이었다- 사라져가는 소소한 인물들의 실상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얽히고 섥혀서 소설보다 더한 재미로 다가왔다.  그러다보면 처음에는 황당하다며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했던 반란군주 중에는 앞뒤의 사정을 찾아 읽다보면 이해하게 되는 인물들이 나온다.  또 개중에는 참 괜찮은 군왕이 될 수 있었는데(또는 조금은 더 오래 그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 목숨과 나라를 다 빼앗기는 군주들도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의 莊宗 이존욱의 경우가 가장 아쉽고 기억에 남는지라 한달에 걸쳐 사서 모은 자치통감 역서들 중 이 29권을 특별히 꼽아보게 되었다.

 

 

순간의 판단이 一身의 멸망 정도가 아니라 一族의 誅殺을 초래할 수 있고 (이걸 자치통감에서는 간단하게 族誅라고 표현하더라) 그 아래 수많은 백성들의 流離乞食과 한 城의 초토화는 기본이었던 그 시대에, 노회하고 음흉하고 순간판단력이 뛰어나며 결단력이 있어야만 그나마 자신의 1세대는 지켜낼 수 있었던 때에 상대적으로 어린 약관 정도의 나이에 父王의 죽음으로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왕위를 이어받은 이존욱은 10여 년을 솔선하여 전쟁터를 누비며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 주변국을 정벌하며 百尺竿頭에서 살아남고 조금씩 통일해나간다.  을 멸망시킨 후 드디어 國名을 唐을 잇는다하며 稱帝한 것까지는 좋은데(역사에서는 이 나라를 唐이라 한단다), 사람이 이룬 뒤에 수성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던가... 고락을 함께 한 군신들을 무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일이라 하여 그 때부터 매일 연회와 수렵으로 주위를 안 돌아보고, 또 내실을 기하기보다는 천하통일에 대한 야심이 컸었나(그래봐야 진시황의 시대와는 달랐던 것이 이때는 한참 거란이 팽창하던 시기라 그가 겨뤄야 할 세력은 그 당대에 해결될 수준도 아니었다) 또다른 강국인 후촉을 공격하다가 결국 불만을 품은 세력들의 반란으로 피난하던 차에 벌어진 격렬한 전투 속에 화살을 맞고 죽고만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긴 10여 년의 전쟁을 끝으로 황제로 오른지 불과 4년 만, 칭제한 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과거의 고락을 함께 한 동료들을 다 잊고 한 때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던 삶의 허무한 결말이었다.  이 때가 만 42세.  

 

혼자만의 비명횡사라면 그나마 덜 억울할 텐데 난리통에 그의 후계자는 또 다른 곳에서 자결하고 그의 다른 어린 아들들은 그 후로 결코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로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결국 그 나라는 통채로 다른 장군에게 넘어간다.  그런데 사실 그 장군은 그리 하고싶어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조정의 조여오는 의심과 온갖 권신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이대로라면 족멸당하여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선수를 쳐서 살아남을 것인가'의 기로에서 강요된 선택에 따른 부산물에 불과했단 것도 안타깝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나..  그렇게 장종(이존욱의 사후 묘호)에게서 결과적으로 나라를 찬탈하게 된 이사원(사후 묘호 명종)은 또 장종이 그러했던 것처럼 권신에게 휘둘려 권력의 분산을 겪게 되고 역시 그의 사후에는 또 다른 장군인 석경당에게 그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 - 그리고 석경당도 사실 그 제위가 탐나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세태에 따르다보니 결국 제위찬탈이 되더라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전쟁터를 넘나들며 항상 검과 창을 휘둘렀을 테니 보통 생각하는 나약하고 비대한 군주는 분명 아니었다.  황제로 즉위한 후에도 手拍을 통해 측근장군과 함께 무예를 겨루고 生母와 嫡母에 대한 예의가 지극하였다는 것을 봐서는 심신이 다 무뎌진 군왕도 아니었다.  하지만 교만함은 일신을 망하게 하였고 당시 시대적 특성 상 그 가문을 통채로 지구 상에서 말살하게해버린 것에는 결코 예외가 없었다는 점은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귀한 교훈이기도 하다.  장종의 팬(?)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라 한다면..  JFK 주니어가 사고사를 당했을 때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가 먼저 사망해서 그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못 본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했던 것과 같은 점이랄까.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뜻을 모아 열심히 다같이 노력했는데 그것이 일단 이뤄지고 나면 그렇게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과거지사가 되고 기억 속에 추억으로서도 가치가 없는 수준이 되는 것일까?  일단 권력의 중점에 서고나면 그 떡고물들을 노리고 주변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또 어디선가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또 누군가는 음모를 꾸미고.  창과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인간사회가 있는 곳이라면 현재까지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는 권력층(그게 정치판이든 기업 내 암투이든)의 생태는 참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모택동이 중국의 赤化統一을 위해 시간이 부족한 때에도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밤잠을 쪼개가면서까지 탐독했었나 보다.  知彼知己白戰不殆라고,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다면 어차피 그 판 안에서 놀 바에야 그 생리에 누구보다 정통한 자가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될 테니까.(모택동을 보면 그 판단이 맞기도 했고.)

 

그래도 이 책 내용 중 우리나라의 일부 재계나 정치계의 인물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은, 험난한 시대였을수록 후계자를 고를 때 각국의 그나마 현명한 군주들은 꼭 자기 핏줄에만 연연하지는 않고 오히려 각 후보자의 재능을 깊이 고려했다는 점이다.  전쟁통에 주운 고아를 양자로 들여 키우고 그가 훗날 후계자가 되기도 하고, 또는 아끼는 장수에게 자신의 姓을 하사하여 가족으로 만들고 親子들과 함께 동등한 대우로 - 함께 親王으로 책봉해준다든가- 나라를 지키는데 활용하기도 함으로써 그 어지러운 난세에 나라의 수명을 좀 더 길게 유지하려 노력했다든가.  그와 달리 현대의 몇몇은 자녀의 무능함에 상관없이 단순히 자기 유전자를 이어받았단 이유 하나만으로 멀쩡한 회사를(그것도 주식회사를!) 물려줬다가 家業이기도 했던 기업체를 통채로 공중분해 해버리게 했다든가, 그 아버지가 정치판에서 이름이 있었다고 그 뒤를 이어 한 번 뛰어볼까 하며 슬쩍 숟가락을 얹고 보려 애쓰는 몇몇 2세들 등등, 그것이 결코 선대의 업적을 위하는 길이 아니란 것을 그들도 조금은 알아야하지 않을까.

 

 

읽다보니 새삼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어디 이런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요즘 한참 유행하는 히어로물보다 더 놀라운 인간드라마가 꼭 남의 나라에만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사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나는 남침을 잊지말자는 의미로 6.25전쟁이라 부르지만 공식명칭은 "한국전쟁"이라 한댄다) 시기를 거쳐 현재의 한반도 상황 상 위아래 두 나라가 과거문물에 대한 조사와 유지에 대해 협조하지 못 하는 반세기를 거쳐 이미 많이 유실되고 왜곡되어, 많은 부분이 후세대에 제대로-아니 거의- 전달되지 못 하고 있는 현 상황을 돌아보면 아쉽기만 하다.  언젠가는 이념과 사상을 떠나서 학문에만 정통한 이들이 모여서 학자로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며 함께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성숙한 분위기가 한반도 위에도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하튼..  이런저런 걸 다 떠나서, 이런 쫄깃쫄깃한 책을 편안한 모국어로 읽게 해주는 국가별 또는 문화별로 포진한 우리나라의 저명한 학자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하다.  또 한 편으로는, 이런 훌륭한 학자들이 비용이나 기타 출판계 사정에 상관없이 이런 귀한 譯書들을 부족함없이 출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겠다.  일전에 조선왕조의 승정원기록을 한글로 완역하는데 거의 30년 계획으로 해오는 과정에 곧 그 끝이 보인다는 대단한 내용을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얍삽한 세태에 휘둘리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묵묵히 내공을 기울여 한가지 우물을 오롯이 파고 후대에 전달해주는 학자들이 있는 한 그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는 사회란 것이 내 믿음이요 오늘의 소박한 위안이다.

 

중국역사, 오호십국시대, 진왕 이존욱, 후당 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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