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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 강렬한 노란색 표지에 이끌렸었다. 대체 무슨 작품일까 하고 서평을 읽어보니, 우선 작가의 약력이 내 눈을 끌었고 그 다음에는 독자들의 호평이 내 눈을 잡았다. 노작가가 길을 걸어가면서 자아를 찾고 신을 찾았다고.. 안 그래도 산티아고의 길에 내심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 내게도 올까 하고 항상 의심하는 사람으로써(걷는 건 상관없는데 필요한 만큼 버려야 한다는 반비례의 공식을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싶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쉬움이 없는 서평들이었다.
주저없이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하고 책을 받아볼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토요일에 받아들고 일요일에 다 읽었는데.. 읽을수록 연륜이 가득한 노작가의 인생경험 풍부한 얘기라기보다는, 버릇없이 늙어간 노인네의 치기어린 글장난이란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우선 자기를 산티아고의 순례길로 이끈 제자 내지는 후배 작가를 가리키는 호칭도, 차라리 Y나 N 등 이니셜로 하든지.. 어느 순간에 "치타"라는 단어가 나오고 치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속으로 투덜대는 모습으로 점철된 문장들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치타? 타잔의 치타 아니면 진짜 표범같은 치타? 뭐지?" 했었다. 나야 그 치타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 글을 읽는 문인들은 대충 그 치타가 누군지 다 알리라.. 여하튼 서영은쯤 되는 노작가를 모시고 산티아고를 한달 넘게 다녀온 여류작가라면 그 바닥이 다 그 바닥인데 서로 다 알지 않을까.
그래, 글을 읽다보니 자기본위로 길을 이끌어나간 치타의 경우없음에 나도 혀를 끌끌 찬 건 사실이다(물론 어디까지나 버릇없이 늙어간 노인네 버젼으로 씌여진 글에서 보여진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또 뭔가? 그 돈을 써서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들여서 거기까지 가서 결국, 치타를 탓하고 치타를 탓하는 가운데서 조금은 자기성찰이 되었다고 우쭐하는 글을 썼다니,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다는 것인지.. 동행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투덜댈 거면 적당한 선에서 중간에 서로 헤어지든가, 결국 그럴 용기는 또 없어서 그 욕을 하면서도 다시 그 치타한테 의지해서 자기 항공권까지 맡기고 졸졸 따라다니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이걸 같이 즐겨줘야 하나?'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는 식으로 시종일관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 내지는 인간적 성장도를 그려내려고 하는 모습에는 솔직히.. 한심하고 좀 역겨웠다. 그렇게 잘난 척 하기 전에 자기가 정말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썼었더라면.. 나이 60 넘어서 그 먼 길을 다녀왔으면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겸허해지고 좀 더 착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치타와 함께 다니면서 치타 흉을 본 작가 본인의 뜻과는 달리, 치타만도 못 한 사람이었던 노인네의 치기가 활자화된 것에 불과한 책을 내가 돈을 주고 샀다니.. 표지와 작가의 이름에 속아서 내린 결정치고는 참 오랫동안 후회할 실수였다. 환불할 수 있었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상품을 사서 이미 그 상품을 다 사용해버린 입장에서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그러다보니, 이 실수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짜증은.. 그냥 만나는 첫번째 사람에게 "심심풀이로 볼 만하니 슬슬 보시고 다 읽으면 안 돌려주셔도 되니 그냥 버리세요" 하고 쥐어 보내는 것 뿐이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