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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리멘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레멘 박사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유학생활에 지쳐서 한글로 된 책을 접하고 싶어 인터넷으로 찾은 책 중, 레멘 박사의 책이 있었다. 책표지 가득히 채운 그녀의 온화한 백발머리의 사진은 그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정독한 뒤에야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참 낡은 느낌의 회색빛 나는 그런 책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그렇게 찾지 않았더라면 내 손에 결코 잡히지 않았을 책... 그렇게 만난 레멘 박사의 글귀 하나 하나는 참 따스하고 가슴 적시는 얘기들이었다. 예일대였었나 하버드였었나.. 어려운 의대공부를 마치고 또 다른 유수한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교수로 바쁘게 살아가며 느낀 일들을 조용히 적어내려간 내용 중에, 한가지 아직도 마음을 적시고 잊혀지지 않는 레멘 박사의 어린 환자 얘기가 있다. 소아암으로 결코 살아서 병동을 떠날 수 없으리라 모두 예견하던 어린 남자아이가, 어느날 간호사에게 옷장 속의 옷들을 자기 가방에 싸달라고 부탁했단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저 오늘 집에 가요라고 대답하는 그 순진한 표정에 간호사는 차마 사실을 말해주지 못 하고, 다른 젊은 의사들에게 아이의 기대를 꺽는 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기대만 하고 있게 하는 것이 더 안 되었다고 대신 사실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 소아과 과장이었던 레멘 박사가 들었다. 다 큰 어른들이 어린 환자에게 휘둘리며 어린 환자를 혼자 내버려뒀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직접 처리하겠다고 나선 레멘 박사 역시.. 어린 환자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에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단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어린 환자는 엄마 품에서 "이제 집에 가요" 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아이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그 아이의 기대가 엉뚱한 것이리라는 어른들의 잣대로 오히려 아이보다 못 한 판단에 우왕좌왕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몸보다는 마음을 먼저 접하고 그 마음을 치료하는 영혼의 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레멘 박사. 그녀의 또 다른 책을 이렇게라도 우연히 접하게 된 기쁨은 정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앞으로도 그녀의 저서들을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