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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비르기트 브란다우 외 지음, 장혜경 옮김, 조철수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히타이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전쟁을 주로 한 민족이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 뒤에는 풀뿌리도 남지 않았다'라는 한 줄의 묘사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중동의 고대문화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 그 말은 앗시리아를 묘사한 것이었지 히타이트가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그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인간적인 고대의 가장 오래된 히타이트의 법전은 감격까지 하게 해준다. 인류의 역사상 먼 과거에 더 찬란한 문화가 있었고, 서기 연력 시작에 가까와질수록 야만스러워지다가 서기 연력이 시작하면서 다시 조금씩 이성적으로 나가고 있다는 어떤 역사학자의 실없는 주장이 뜬금없이 생각났다.
저자의 책 속의 서술은, 히타이트 문명에 대한 경외감과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저자를 따라서 걸어들어가는 고대 문명의 기행은 자세하면서도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즐겁기만 하다. 다양한 이름의 고대 대왕들과 전에 들어봤음직한 주변국가의 또 다른 대왕들의 이름이 같은 시대상으로 겹쳐서 나올 때는, 오늘날의 국가간의 관계와 세계연합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다시 느낀다, 당시의 문화가 얼마나 발전하고 화려했던 시대였는가를...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한 국가, 한 민족이 통채로 사라진다. 히타이트 뒤를 쫓던 고고학자들은 그 의문을 풀 길이 없어서 항상 고심했었다. 외계인이 아닌 이상 전부 우주로 탈출했을 리도 없고, 남미의 어떤 문명과 함께, 히타이트의 갑작스러운, 흔적도 없는 사라짐은 고고학계의 오래된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이 책의 끝에 그 부분이 해명되어있다. 히타이트 민족은 자신들의 수도를 버리고 떠났었다. 새로운 곳을 찾아서... 남은 도시는 약탈자 손에 의해서 그리고 자연의 힘에 의해서 불타고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떠나간 자들은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방랑하다가 주변국으로 조금씩 편입되면서 서서히 소멸해버린다. 한 문명의 덧없는 최후였다.
신에게 바치는 노래이기에 역사를 기록하는데 전혀 과장이나 거짓을 섞지 않으려 노력했던 민족,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해서 법의 판결이 공명정대하게끔 노력했던 민족, 아량을 베풀고 적을 용서하며 그 여생을 돌볼 줄 알았던 민족. 분명 신에게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한 화려했던 고대문명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수천년이 지난 지금, 이 책 속은 그 사라진 문명을 우리들 머릿속에 부활시켜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