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킹 / 예찬사 / 198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간혹 시대의 인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저들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기에 일부러 그 곳에 그렇게 태어나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그러다가 문득 놀랄 때는,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으례껏 오랜 역사 속에 묻혀있는 느낌 속에서 지극히 현대에까지도 그렇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다.

킹 목사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몇 가지 사실 외에는 아는 점이 없었다. 시민법에 인종차별 금지 조항을 미헌법에 개정시킨 시민운동가, 죽음으로서 그 불길을 당긴 흑인을 위한 흑인 지도자.. 뭐 그런 정도일까. 그런 내게, 그의 모습이 전율로 다가올 일이 있었다. 어디서 우연히 집어들었던 킹 목사의 워싱턴 집회에서의 연설 원문...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저 유명한 문구와 함께 시작된 글을 조용히 읽어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던 것은, 흑인도 아니고 그 시절에 같은 나라 사람에게서 다른 피부색이란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아본 적도 없는 나에게까지 대체 뭘 전해줬기 때문이었을까.

그 때의 의문을 풀 길이 없던 차에, 몇 년 뒤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을 산 것은, 그 때 내가 느꼈던 감동을 다시 살려주면서 킹 목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얼마나 킹 목사를 모르고 오해했었는지를. 그의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는, 나는 단지 킹 목사를 흑인목사로 그의 동포인 흑인을 위해서 투쟁하다가 흑인을 위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으로 알았었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에서 드러나오는 그의 고뇌와 인품은, 그의 시민운동이 단순히 흑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실은 자기 나라인 미국과 또 그 나라가 소속되어있는 이 세계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내게 일깨워줬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신 앞에서는 똑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피해자의 육체가 멍이 들 때 가해자의 정신도 함께 멍들어간다는 것을, 그러기에 그 삶이 멍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상대로, 지친 몸과 가장 불리한 피부색을 띄고 그는 역설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나에겐 바로 그 꿈이 있다고...

이 책을 덮으면서, 신이 일부러 한 위대한 영혼을, 그 시대를 구하기 위해서 가장 불리한 피부색을 가지고 그곳에 태어나게 한 것은 아닐까 한 부질없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코 그 시대상황으로는 갖기 어려웠을 그의 깊은 박애주의와 넓은 통찰력을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신이 그와 같은 인물을 일부러 내줬다면, 그건 그 동시대 사람들 만을 위해서는 아니리라...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그의 꿈에 함께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닌가, 저 불타오르는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들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을... 인류가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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