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와 데리다의 도발적 문제제기

아방가드르적 '유럽'전망 제시 ... 에코, 바티모, 로티 동참

2003년 06월 26일 강진숙 통신원

지난 5월 31일, 유럽 언론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유럽 전역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사전에 비밀로 부친 채 유럽 각국의 일간지에 자신들의 주장을 일제히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 지식인들의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EU가 장차 어떠한 외교정책을 수립, 실행해야 하는가에 맞춰졌다. 그 선두로서 독일의 대사상가로 평가받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독일의 유력한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하 FAZ)'에 아방가르드적인 핵심유럽의 전망을 제시했다. 이런 지식인 집단의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우선 이 지식인 집단의 주도층이 이라크전의 발발 전후로 반전과 평화 운동을 주도했던 주체들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반전평화운동을 계기로 유럽 통합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어 지식인들의 역사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전개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례없는 이 유럽 지식인 운동의 대변자는 위르겐 하버마스다. 지난 5월 31일 FAZ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그는 프랑스의 동료 철학자 자크 데리다와 공동으로 유럽의 전망에 대해 논증했다. 그들의 핵심적 문제제기는 유럽 통합(통일)을 시험했던 이라크 전 직후, 세계적으로 유럽의 역할은 왜 새롭게 규정돼야 하는가 라는 점에 있다. 요컨대 유럽인들의 공동의지와 '정체성'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전쟁이 유럽 지역에서 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유럽을 변화시켰다. EU 내에서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각각의 일국 차원의 관심사를 벗어나 유럽차원의 사고들로 진전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하버마스는 시민들의 “우리-감정”(일체감)을 이성적 정치의 척도로 만들 방법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기고문은 지난 1월 31일 언론을 통해 영국과 스페인의 주도 아래 EU 소속 8개국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8개국의 서신’에 반대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이 비판의 출발점은 두 역사적인 날, 즉 전쟁지지와 반전의 입장이 사회적으로 표출된 시점의 비교이다. “하나는 유럽 내 신문들이 아연실색해 있는 독자들에게 ‘부시에 대한 충성의 표명’을 보도한 날이다. 이 날 스페인 총리는 다른 EU 국가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유럽의 전쟁 지지국들을 향해 부시에 대한 충성을 표명하도록 신문지상을 통해 요청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 2월 15일 시위 대중들이 유럽 전역의 수도들, 예컨대 런던, 로마,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베를린 그리고 파리에서 이러한 교섭행위에 대한 반대를 분출한 날이다.” 두 철학자들은 이 두 날을 망각하지 말 것을 주장하며 유럽의 외교정책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들의 논점은 매력적인 문화적 ‘비전’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15일에 있었던 대규모 반전시위는 “유럽 공론장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같은 날 일제히 다른 저명한 유럽의 신문들에도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공동 기고문에 대한 다른 지식인들의 보충 의견들이 실렸다. 예컨대 파리의 ‘리베라시옹’은 데리다의 요구와 하버마스와 공동으로 작성한 텍스트를 제시했다. 이탈리아의 ‘레푸블리카’에는 움베르토 에코가 표명했고, 스위스의 ‘새로운 취리히 신문’에는 아돌프 무쉬히가, 스페인의 '엘 빠이스'에는 페르난도 사바터, 이탈리아의 ‘라 스탐파’지에는 ‘모더니티의 종언’으로 알려진 지안니 바티모 등이 유럽 유수의 신문들에 각각 의견들을 표명했다. 그리고 신실용주의를 제창한 미국의 철학자 리차드 로티는 하버마스의 의견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남독일 신문’에 제시했다.

이 대규모의 지식인 ‘발의’ 운동에 대한 근거에 대해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즉 유럽인들의 연대는 우선 ‘핵심 유럽’ 차원에서 설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럽적 가치인 계몽사상을 복원하고, 공동의지로 통합된 유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유럽 내의 변화, 즉 2004년도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고, 동시에 터어키의 입회 신청 등에 직면하여 지식인 집단 내에서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이 핵심유럽의 역할에 대해 주장하는 바, “진전한다는 것은 배제를 뜻하지 않고”, “아방가르드적인 핵심 유럽은 작은 유럽으로 고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추동력 있는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하버마스의 주장에는 심도 깊은 고민과 논리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해명돼야 할 과제가 많다. 예컨대, 약 4억에 달하는 유럽 시민들의 다양한 동기와 서로 다른 요구들을 어떻게 하나의 공동의지로 구축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목적을 향한 공동의지인가. 또 한편으로 하버마스가 공동 의지로 구축할 수 있다는 유럽 모델은 시민들의 결속 아래 구축되는 단일 민족국가를 말하는 것인가. 우려되는 점은 경제적, 정치적 역사가 다른 유럽 각국의 정체성에 대한 ‘차이’가 전제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집단주의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버마스를 위시한 이 유럽 지식인 운동의 전개는 여러 가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역사를 생성하는 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라는 감성을 이성적 정치의 척도로 현실화시키는 방법의 모색, 경제적 목적의 블록화가 아니라 반전운동을 계기로 외교정책적 공동 대응을 위한 유럽 통합의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 유럽’의 진취적인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 등은 앞으로 새로운 유럽을 추동할 ‘기관차’의 동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숙 독일통신원/라이프치히 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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