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파괴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괴라고 해서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사람들을 구속하는 사회조건이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갖가지 전제를 묻고 해석하는 일을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길을 보여주는 일이겠지요.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지식인의 일은 사람들에게 도달해야 할 곳으로 이끌어 줄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부수는' 작업이겠지요. 장애물을 부순 뒤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사람들이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물을 부수는' 작업에는 지금까지 닫힌 집단을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집단이나 사회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을 포함합니다. [...] "여기저기에 길이 보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언제나 기로에 서 있다. 어떤 순간일지라도 다음 순간을 모른다. 인간은 기존의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지만, 목적은 잿더미가 아니라 잿더미 속을 누비고 다니는 일이다." ("파괴적 성격", <폭력비판론>)
사까이 나오끼, <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 (창작과비평,2003) 중 대담 부분에서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