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어드: 늪 속의 여우

<매트릭스>의 네오와 스미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골렘. 일마들은 이렇게 적대적 짝(적대적 쌍둥이)을 이루고 있다.  네오와 스미스, 프로도와 골렘은 자유의지의 두 얼굴 혹은 양극을  대표하고 탐욕과 무절제의 자유(스미스, 골렘)는 자기 희생과 헌신의 자유(네오, 프로도)에 의해 정복됨으로써 그 뻔할 뻔자의 교훈적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런 적대적 쌍둥이 관계가 이 영화 <패트리어트>에서도 나타난다.  전설적 영웅 벤자민 마틴(멜깁슨 분)과 잔혹한 영국군 장교 윌리엄 태빙턴(?  분)이다. 

이 짝패는 잔혹하다는 점에서 대칭을 이루지만 전자는 죄의식에 몸을 떨고 후자는 무도덕적 냉혹함으로 흔들림이 없어 여기선 비대칭을 이룬다. 왜 이런 짝패를 만들었을까?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일부러 균열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더 큰 비젼으로 통합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더 큰 비젼이란 '미국 독립'이란 숭고한(?) 비젼이다. 식민지는 식민지배자들에게 소위 문명적 규범를 맘껏 넘어설 기회의 벌판이다. 여기서 두 명의 식민자(인디언 흉내를 내는 미국인과 여우 사냥을 즐기는 듯한 영국군 장교)가 열라 자유를 누리며 폭력을 행사한다. 한 놈은 인디언을 몰살했고 다른 한 놈은 식민지 미국인을 몰살하는 중이다. 학살자라는 점에서 둘 다 차이는 없지만 벤자민 마틴은 네오나 프로도처럼 한갓 양심은 좀 남은 놈이다.  그리고 그 쥐톨만한 양심에 기대어서 제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 정당성을 구축한다. 물론 당연히 날림공사지만...      

설상가상으로 멜 깁슨이 분한 벤자민 마틴에게 진짜 어메리칸 네이티브, 즉 인디언의 이미지를 씌운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그 많던 인디언은 다 어디 가고 저기 도끼 하나 들고 휘둘며 뛰는 백인 하나만 남았는가? 그 많던 인디언 다 죽이고 그 땅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이미지까지 도둑질을 한단 말인가? 얼마 전 본 클린트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와 정확히 정반대에 위치하는, 양심도 없는 '국가의 탄생'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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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3-12-2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자민 마틴의 캐릭터는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맞나?) 캐릭터와 비슷하다. 식민지 변경을 지배하고 그 곳에서 문명 바깥의 자유를 누리며 고통받는 아웃사이더가 조금 소프트해진 채 그려진다고 할까? <리쎌웨폰>의 멜깁슨의 이미지와도 겹치니 겸사겸사?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란도는 아예 죽임을 당해야 하지만 <패트리어트>과 <리쎌 웨폰>의 멜깁슨은 국가과 가정의 품에 안전하게 다시 안긴다. 부르조아적 삶에 식상한 사람들이 안전한 일탈과 회복의 사이클을 투사하기에 적당한 캐릭터가 아닐런지?

간달프 2003-12-2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에게 식민지는 일탈과 매혹, 공포의 심연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못 알아들을 말을 하거나 아예 말을 못하거나 심하면 이 영화처럼 그 존재가 (소문만 남거나) 지워져 버린다. 식민지 '벌판', '밀림', '늪', '숲' 따위는 문명의 일원이 서구인이 '여우', '늑대', '인디언'이 되는 짜릿함을 제공하면서 그로 인한 죄의식도 함께 붙여둔다.

간달프 2004-01-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정작 벤자민 마틴(멜 깁슨 분)이 뒤집어 쓰고 있는 인디언의 이미지마저도 인디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침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플로벨' 자신이 그녀 대신 말했고, 그가 그녀를 대변하고 소개하고 표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