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ppearance of closed faciticity that adheres to the philosophical investigation and holds the researcher in its spell disappears to the degree that the object is constructed in historical perspective. The vanishing lines of this perspective converge in our own historical experience. It is thereby that the object constitutes itself as a monad. In the monad everything becomes alive which as facts in a text lay in mythical fixedness." (Susan Buck Moss, The Dialectics of Seeing (MIT Press. 1999) p.292)

위의 원문을 역자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연구자를 사로잡는 닫힌 사실성은 철학적 탐구와 결부되어 있다. 대상이 역사적 관점에서 구성될수록 이러한 사실성은 사라진다. 이러한 관점의 소실선은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으로 수렴한다. 그러므로 대상은 단자로 형성된다. 텍스트에서는 신화적 고착의 상태에서 하나의 사실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단자에서는 살아난다." (수잔 벅 모스, <발터벤야민과 아케이드프로젝트, 김정아 역 (문학동네,2004) p.375)

영 맘에 안드는 번역이라 아래와 같이 고쳐봤다.

"닫힌 사실성은 철학적 탐구와 결부되어 연구자들을 사로잡는데, 닫힌 사실성의 외양은 대상이 역사적 원근법 속에서 구축됨에 따라 사라지며 이 원근법의 소실선들은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으로 수렴된다. 대상이 그 자체로 하나의 모나드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화적 고정성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한 텍스트 속의 사실들처럼 배치되지만 모나드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부분은 공간축과 시간축이 교차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교차하는 (어쩌면 모순처럼 뵈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연속성 불연속성에 대한 언급은 역서 p.271에서 "상품 형식의 현상학의 연속성과 변증법적 이미지가 암시하는 불연속성", "역사적 해석축과 형이상학적 해석축의 긴장" 또는 "형이상학적 탐구와 역사적 탐구 사이의 방법론적 관계:스타킹 뒤집기" "이러한 모순적 대립항의 종합은 [...] 두 축의 교점" 등이 있다.)

김정아의 번역에서는 "appearance"를 또 누락했는데, 나는 이 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라바터의 '본성'과 '표정'의 구분과 겹쳐볼 때 그렇다. "appearance"는 '표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외양(appearance)가 사라질 때 '대상'은 '모나드'가 된다. (그러나 역자는 'appearance가 사라짐'이 아니라 '닫힌사실성이 사라짐'으로 오역했다)  '닫힌 사실성'이란 얼굴은 본성과 표정을 갖는데, 닫힌 사실성의 '본성'은 역사적 원근법 속에서 대상이 구축됨에 따라 나타난 '모나드'이다. 그리고 모나드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난다. 

가라타니 고진이 라이프니쯔의 모나드론을 설명하는 부분을 들어보자. 모나드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라이프니쯔는 무한을 한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점) 속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개체 자체 속에서 무한성이 발견되거나 혹은 이러한 개체(모나드)가 발견된다. [...] 접점은 곡선의 무한소로서 자체가 하나(점)이면서도 방향을 내포하며 모든 곡선을 '표출'한다. 무한소의 점은 말하자면 '형이학적인 점'이다. 이는 더 분할할 수도 없고 부분도 없다. 더욱이 이는 전체를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라이프니쯔가 말하는 모나드이다." (가라타니 고진,<탐구2>,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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