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스 이벤스의 '강'과 '바람'
- <강의 노래>, <센느가 파리를 만나다>, <미스트랄>

요리스 이벤스의 위 세 편의 영화를 보고 그의 일평생의 중심 주제가 '강'과 '바람'이라는 점을 주지받자 불현듯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의 충격적인 마지막 엔딩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프리드리히의 그림도... 


Caspar David Freidrich

카스파 디비트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사>라는 그림에는 한 사람이 해변에서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까지 펼쳐진 저 괴물같은 바다를 보면서 서 있다. 이 괴물도 생각을 할까? 이 괴물을 경험하면 다른 모든 사상이 다 해체되지 않을까? 니체가 바로 이와 같은 바닷가의 수도사다. 그는 괴물을 바라보면서 규정되지 않는 사상은 일단 사라지게 하고,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만들기 위한 시도를 준비한다. 왜 확고한 이성의 제국을 떠나서 미지의 열린 바다로 가야만 하는지 언젠가 칸트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 머물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순수오성의 나라를 단지 두루 살펴본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 측량도 했으며, 또한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에게 그에 맞는 적당한 자리를 정해주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폭풍우 치는 넓은 대양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 이 대양에는 짙은 안개가 깔려 있으며, 종종 녹고 있는 빙하가 대륙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코 끝낼 수 없는 모험을 하려는, 하지만 이러한 모험심을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선원들이 결국에는 이 대양에서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가 결국에는 실망하게 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3,267)

하지만 니체는 바닷가로 떠났다. 니체의 사상과 함께 가면 목적지가 없다. 그 어떤 성과나 결론도 없다. 오직 끝나지 않은 사고의 모험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종종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모험적 영혼은 노래를 불러야만 하지 않을까? (루디거자프란스키, 117)

[...]

칸트는 이 섬에 머물면서 폭풍우 치는 대양에서 저 악명 높은 물 자체 Ding an sich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쇼펜하우어는 과감하게 더 나아가서 이 대양을 의지라고 명명한다. 니체에게 절대적 현실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며, 괴테의 말을 빌자면 영원의 바다, 다양한 활동, 작열하는 삶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이해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어떤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총체적 개념이다. 인식될 수 없는 것들의 대양이라는 칸트의 비유에 마치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디오니소스의 철학자 니체는 나중에 자신의 책 <즐거운 학문>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드디어 우리의 배가 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식하는 자들의 모든 시도가 다시 허용된다. 바다,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렸다. 이렇게 '열린 바다'는 예전에는 결코 없었던 것이다." (3,574) (루디거자프란스키, 118)

요리스 이벤스의 '바람'(혹은 미스트랄)은 칸트나 니체의 '거친 바다'와 비슷하다. 그리고 요리스 이벤스가 <미스트랄>에서 재치있게 언급하듯이 사람들은 바람에 저항하기도 하고 바람과 놀기도 한다. 사람들은 방풍림이나 방풍벽을 쌓아서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고 마을과 도시, 문명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람 속에서 놀고 연기하기도 한다. 요리스 이벤스에게 강이 코스모스의 세계라면 바람은 카오스의 세계다. '강'은 문명과 연관된다. "센느가 파리를" 만나고, <강의 노래>에서는 문명적 정의를 위해 세계 노동자들의 대동단결을 통해 자본가의 독점을 깨부수자고 부추킨다. 강의 세계는 부덕과 부조리, 비참이 존재하지만 인간 이성에 의한 혁명과 재생이 가능한 질서와 조화의 세계다. 프롤레타리아의 신성한 노동의지와 사회주의 국가의 도래로 그것이 가능케 되는 세계로 그려진다. 반면에 바람의 세계는 그 바깥, 아니 '내재된 바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니체의 <두 개의 방> 이론을 연상시킨다.

"니체는 예술의 '두 개의 방' 이론을 주장한다. 높은 문화는 "사람들의 뇌 속에 말하자면 두 개의 방을 만든다. 하나는 학문을 느끼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이 아닌 것을 느끼기 위한 방이다. 이 방들은 서로 붙어 있으며, 혼란이 없고, 서로 분명하게 나뉘어지고, 서로 연결 가능하다.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 곳에는 동력이 있으며, 다른 곳에는 제어기가 있다. 환상과 편파성과 열정은 열을 발산하는 것들이다. 열이 과다하면 불길하고도 위험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막는 것은 학문, 인식의 학문이다." (2,209) (루디거 자프란스키, 305~306)

에른스트 베르트람은 그의 책 <니체-한 신화의 시도>에서 니체를 빌어 '문화'와 '문명'(혹은 독일적 문화와 프랑스적 문명)을 구분하는데 문명은 삶의 유지이며 삶을 안심시키는 것이라면, 문화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본다. "문화는 음악의 디오니소스적이고 비극적인 정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문명은, 이것도 물론 필수적인 것이지만 밝고 긍정적인 우리가 살 수 있는 분야에 머문다. 문명은 합리적이지만 문화는 합리성을 초월해서 음악적이고 신비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여전히 영웅적이다."(루디거 자프란스키, 499) [...] "편히 사는 데에는 문명이면 충분한데, 도대체 왜 문화가 필요한 것일까? [...]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에서 내가 격었던가 - 모든 것이 순조로우면, 그러면 역시 모든 것이 다 끝이 난다." (베르트람, 353) (루디거 자프란스키, 501)

    * 루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 오윤희 역 (문예출판사,2004)

    *  European Foundation Joris Ivens - http://www.ivens.nl/

    * 미스트랄(Mistral)이란? - 프랑스의 론강을 따라 리옹만으로 부는 강한 북풍. 하강류(下降流)와 좁은 골짜기로 휘몰리는 분류효과(噴流效果)로 거세지며, 스콜성의 한랭건조한 바람이어서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준다. 론강의 삼각지대인 프로방스지방에서 불어오는 북서풍과 뒤랑스계곡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이 합류하는 주변이 가장 강하다. 일반적으로 저기압이 티레니아해 또는 제노바만에 위치하고 고기압이 아조레스에서 중부 프랑스로 진출할 때에 분다. 미스트랄은 한번 불기 시작하면 수일간 계속되는데, 특히 마르세유에서는 연간 거의 100일 동안이나 이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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