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James의 컴백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과 미국 문화의 기원을 탐색하는 그의 여정에서 '블루스'를 선택했다. 빔 벤더스의 이 영화에는 미국 대중 문화의 핵심요소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그걸 간단히 세 명의 사라진 블루스 가수를 다룸으로써 전달한다. 눈 먼 윌리 존슨, 스킵 제임스 그리고 J.B. Renoir... 이들은 각각 공유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유점은 '너머'이고 차이점은 각각 '너머', '견딤', '넘어'다. 견디거나 넘어서는 것은 결국 너머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종착된다. 스킵 제임스의 노래는 자신의, 혹은 흑인이나 고통받는 자들의 삶을 노래로 지어부름으로써 이 세상에서 삶을 미소지으며 '견디게' 하는(혹은 Skip하게하는) 방법이다. 반면 J.B.Renoir의 노래는 동정도 정의도 없는 세상에 대한 즐거우면서도 격렬한 외침이면서 그런 세상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기/요나를 삼킨 고래는 그를 다시 토해낼 수 밖에 없다고 그는 노래 부른다.) 그러나 이 두 명은 모두 눈 먼 윌리 존슨과 마찬가지로 저 '너머'에 대한 동경을 공유한다. 스킵 제임스는 불뚝거리는 삶을 노래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영가 가수가 되고 르느와르는 시키지도 않은 영가를 부르면서 좌중을 썰렁하게 한다. 빔 벤더스는 블루스의 뿌리가 바로 눈 먼 윌리 존슨이 추구했던 '너머'의 세계에 대한 동경에 있음을 거의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그것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광대한 우주와 보이저호로 도장을 찍어놓는다. 그들의 노래는 보이저호에 실려서 그들이 예상하지 못해던 방식이긴 하나, 지구 너머의 세계로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06-12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