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적인가 -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 폴리테이아 총서 2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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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탄핵사태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당황하게 만들었다. 왜 이런 사태가 가능했을까? 일부 국회의원들이 사악하고 반민주적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이 책은 (한국의 정치제도의 일부인) 선거제의 민주성에 대해 묻는다. 본래 17 - 18세기에 세습군주제를 끝장내고 민주제를 도입할 당시까지 선거제는 귀족적 제도의 일부로 여겨졌으나 선거의 (인민에 대한) 대의적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민주적 제도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대의'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미국의 제헌의회에서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 사이의 갈등이 이를 보여준다. 전자는 선거를 '탁월한' 사람을 뽑는 일로 여겼지만 후자는 인민과 '유사한' 사람을 뽑는 일로 여겼다. 연방주의자가 1787년 승리했고 선거는 '탁월성의 원칙'에 부합하는 제도("의회 정치")로 정착했다. 선거제는 주기적으로 모든 선거권자에게 통치자를 선출하고 투표로 심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이지만, 보통사람과 다른(탁월한) 사람들을 통치자로 뽑는다는 점에서 귀족적인, 이중적인(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이중성은 선거제가 스스로 민주적이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나름의 정치적 통합기능을 갖고 있다. 이 이중성 덕에 보통사람들은 선거제가 민주적이라고 여기고 귀족주의적 특질을 원하는 사람들은 선거제를 귀족적이라고 여김으로서 제도의 지속적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의 기능을 갖는다.

처음 정립된 민주체제인 의회정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 이중성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내용을 달리 하면서도 지속되었다. 우리는 섣불리 어떤 제도는 '민주적이다'라고 판정하지만 그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무시한 채 내린 판정은 공허하다. 따라서 제도 자체만을 가지고 민주주의 여부를 논하는 형식적 접근은 민주주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 저자는 그보다는 변화를 제도 내부로 흡수할 수 있는 체제를 더 중시한다. 어차리 형식적 민주주의는 실제로는 불가피하게 이중적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서 민주주의임을 참칭하는 제도가 그것이 놓여있는 사회와 얽히면서 변화하는 역동성에 주목해야 한다. 역동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곧바로 유명무실화하고 이중성의 한 측면인 귀족주의적 성격으로 고착화된다. 우리가 지난 탄핵사태에서 경험한 것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귀족주의적 성격으로 고착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고, 의회 바깥의 다양한 사회적 역동성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상실해왔던 민주적 성격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의원의) 대의와 (인민의) 표현 사이의 역동적 긴장 속에서 우리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이다.  

인내를 요하는 책읽기였지만 책을 덥고 나니, 난장판이 된 지난 의회에서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던 국회의원의 모습이 초래한 혼란함을 이 책이 상당 부분 덜어내 준 듯 하다.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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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 2007-06-14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입니다.
도서에 관한 리뷰를 출판사 홈페이지로 담아갑니다.
미리 허락을 얻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언짢으시다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세요.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umanitasbook.co.kr
입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