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 크로노스 총서 6
이안 부루마 지음, 최은봉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근대사의 드라마는 불현듯 일본 아니메 <신세기에반게리온>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전공투세대인 안노 히데야키가 일본 근대사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영화에 투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체로 그 구도는 이렇다.

1) 가공할 외적의 침입
2) 외적 닮기를 통해 외적에 대항하기
3) 외적 닮기 혹은 외적 능가하기의 기획이 초래하는 예상 밖의 결과(파국)

특히 이 영화에서 'LCL상태'에 관한 부분은 모든 개체를 단일한 생명체로 융합시키려 했던 황도주의의 객관적 상관물처럼 보인다. 철학계에서 현상학과 선불교를 끌어들여 주객일치를 추구했던 '니시다 키타로'나 천황이 패전을 선언하자 초개같이 자기 목숨을 버린 일본의 민초들(대만인, 오키나와인, 조선인들도 있었다)은, 아니메 속에서 'LCL상태'로의 융합상태로 넌지시 언급되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의 종결은 '오타쿠'는 커녕 희망과 연대성의 개인/시민에 대한 아주 건전한 상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사는 위의 패턴을 지금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는 듯 하다. 왜 그럴까? 왜 일본에서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힘차게 뿌리내리지 못했을까? 이안 부루마의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유는 (1)일본 내부로부터 볼 때, 자생적으로 자기 자신을 근본적으로 개조하지 못한 채 '외부의 충격에 기대어' 미봉적으로 일본 개조와 통합을 추구했다는 데 있다. 천황제는 위엄은 있으나 책임이 모호했고 민중들은 현실감을 상실한 채 극좌와 극우를 무모하게 오갔다. 흑선을 타고 온 페리의 침입으로 일본이 개조되었듯이 전후에는 바탄기를 타고온 맥아더에 의해 일본이 개조되었다. (2)점령자 미국의 대일 정책도 문제였다. 전후 이상적인 뉴딜주의자들은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를 선호하여 전쟁책임과 무관하지 않은 일본 관료들에게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권력을 쥐어줬고 반공적 보수주의자들은 이른바 '역코스'를 통해 일본을 미국의 태평양 항공모함으로 재무장시키고 사회의 보수화를 초래했다. 미국의 전후 정책을 지지했던 좌파는 미국에 실망했고 중국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에 빠졌다. 이 모든 것이 일본에 자생적이고 튼튼한 시민사회가 성장할 입지를 축소시켰고 정당정치는 파벌정치로 전락했다. 이 허약한 토대 위에서 이사하라 신타로같은 돌연변이가 또 재생한다. 이것은 다시 30년대 일본의 코스의 재래다. 일본인들도 다시 흑선에 재래해야 일본이 바뀔 것이라며 답답해 한다. 저자는 No!. 일본인들이 다시 흑선에 기댄다면 비참한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이제는 일본인들 스스로 나설 때다.

번역상태에 대해 말하자. 한마디로 개판이다. "본질적인 원리를 위한 중국의 학문, 실제적 적용을 위한 서양의 학문이라는 유명한 격언"(p.25)이란 장황한 구절은 "중체서용"이라고 하면 된다. "그 부를 축적한 약아빠진 상인계급"(p.27)이란 '죠닌계급'을 말할 것이다. 기본조사도 안된 번역임을 증명한다. "토착론자"(p.28)는 '국학자'로 해야 적절하다. (란카쿠에 상응하게 쿠니카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징집된 국군은 생각을 만든다는"(p.58)은 '국민징병이란 생각은'으로 고쳐야 한다. 오역이고 오문이다. "니시다 기카로"(p.79)는 '니시다 기타로'로 "칼리갈리박사의 캐비닛"(p.70)은 '칼리갈리박사의 밀실'로 고쳐야 한다. "인성에 반하는 범죄"(p.146)는 '인류(혹은 인륜)에 반하는 범죄'로, "숨길 수 없는 착오(an honest mistake)"(p.161)는 '완전한 실수'로 고쳐야 한다. "극현실주의"(p.71)란 용어는 없다. '극사실주의'는 있지만... 이외에도 오문과 비문, 오역, 부적절한 고유명사의 퍼레이드다. 존 다우어는 이 책을 '문체가 좋다'고 평하지만 역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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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대일본'을 읽었다.
    from 새로운 출발 2009-04-12 18:29 
    지난주부터 이안 부루마가 지은 '근대일본'(을유문화사)을 읽었다. 일본역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책이 낮이 익지는 않았지만 자유주의자인 저자의 통찰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책은 1853년 페리제독의 개항에부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아시아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근대문명을 수용했던 일본의 성장과 좌절의 역사인 셈이다. 일본은 서양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힘을 최대한 배워서 강국이 되고자 했고, 그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