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네덜란드 회화에서 위상의 전복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 전복을 야기한 당사자들도 아마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 붓의 힘 덕택에 그들은 사물들이 미학적 찬미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찬미의 대상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일상생활의 재현을 가능케 했던 애초의 도덕적 명분은 이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일상적 미덕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화가들은 이제 그 미덕을 규정하는 입법자가 된다. 회화는 이제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환히 드러내주는 빛의 원천이 된 것이다.

 츠베탕 토도로프, <일상 예찬>, 이은진 역 (뿌리와이파리,2003),  p.167

이렇게 네델란드 일상생활의 회화를 일정한 시기 속에 가두어 살펴보는 것은 그 회화를 평가절하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언가 예외적인 것이 특정한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과 그 현상을 우리가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간에 의한 창작의 역사, 즉 예술, 문학 또는 사상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유난히 축복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에 인류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비전으로 더욱 풍요로워지고, 이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이런 유형의 순간들을 외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표시는, 평균적인 재능을 가진 화가들마저 걸작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와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가 그 두 가지 예고, 17세기 네델란드 회화가 또 다른 예다. 이 시기에 역사적, 지리적 상황과 거기서 생겨나는 창작물간에 완벽한 등식이 이루어지고 형태와 의미 간에 완벽한 등식이 이루어진다. 화가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채 이런 등식을 활용하게 된다.(그리고 이 등식은 또, 나타날 때만큼이나 묘연하게 사라져버린다.) 그저 배우기만 하면 얻어지는 순수한 기교나 비결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기에는 무언가 좀더 본질적인 것, 세계와 삶에 대한 해석 자체와 연관이 있는 그 어떤 것이 작용한다. 이 현상은 거장다운 예술적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지혜의 문제다. 비록 인간적 지혜가 예술적 형태를 통해서만 표현된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를 해독하거나 적어도 그 비밀을 건드려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축복받은 순간들은 언제나 인류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  p.215-216

 Hooch,Pieter de <어머니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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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4-01-1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도로프가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를 "예외적인" "순간"으로 명명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그것은 일관된 발전 과정의 한 단계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순간적인 각성이 아닐까? 그것은 영구적 완성이 아니라 이행의 순간이다. 시대와 인간과 예술이 한 데 모여 순간 스파크를 일으키고 사라진다. 눈 뜬 자 볼 것이고 눈 감은 자 지나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