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김동원의 <송환>은 언뜻 우리 시대의 알레고리처럼 비춰졌다. 우리 시대란 민주화 이후의 시대를 말한다. 우리도, 비전향장기수들도 모두 과거에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나라와 싸워야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 나라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나라와 싸우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왜냐하면 적과 내가 너무 명쾌하게 구분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잔인한 고문을 하고 비인간적인 회유를 했지만 그것이 악랄하면 악랄할수록 나의 의지는 더 강해지고 숭고해졌다. 반면 자신이 선택한 나라와 싸울 때는 - 대개 그 나라와 싸우게 될지 몰랐지만 결국 싸우게 된다 -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에 저항하지만 헛발질로 끝나기 일수다. 헛발질이 늘어갈수록 스스로 초라해진다. 그래서 더 어렵다.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된 이후, 그들의 부고가 심심찮게, 생각보다 빠르게, 많이 전해졌다. 왜일까? 악랄했던 '자유대한'의 억압과 마수도 훌륭히 극복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등졌을까? 헛발질이 너무 많아서? 민주화 이후의 우리는 어떤가? 헛발질을 너무 많이 했다. 헛발질을 너무 한 나머지 민주화 이전의 시대를 흠모하기까지 한다. 헛발질 속에서 잃는 것은 아마 '명징한 의지'일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 어떤 이는 '칼의 끝'이나 '가야금 현의 끝'에서 자명한 숭고함을 찾아헤매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