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in Translation> - 잉여와 소외, 공간과 장소

- 영화의 소재는 진부할지 모르는 멜로이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방법은 시대적이고 참신하다. 영화 속 두 인물은 각각 도쿄라는 장소에 대해 잉여와 소외를 표상한다. 여주인공에게 도쿄는 자신의 자리(장소)가 없는 곳이다. 그녀가 도쿄에서 경험하는 존재감은 잉여성이다. 남자주인공에게 도쿄는 자기 일과 자기 자신이 극명하게 분리되는 곳이다. 그가 도쿄에서 경험하는 존재감은 소외성이다. 이렇게 약간 다르지만 엇비슷한 두 존재감이 뒤얽히는 과정이 영화의 줄기다.

- 공간(space)은 비어있는 물리적 연장(material extension)이라면 장소(place)는 (의미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다. 여기서 질문! 왜 이 영화는 하필 도쿄를 택했을까? 혹자는 뉴욕이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두 주인공에게 도쿄라는 장소에 대해 (문화적) 외부자이다. 문화적 내부자에게 장소는 마치 공간처럼 현상되는 경향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사람에게 너무 익숙한 장소는 '장소'가 지니는 개성적 성격이 무화되고 등질화된 '공간'처럼 현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Taxi Driver>의 '뉴욕'과 비교해 보면 보다 분명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Taxi Driver>의 트래비스에게 뉴욕은 (의미 가득한 개성적) '장소'라기 보다는 (텅 비고 무의미한) '공간'에 가깝다. 너무 익숙해서 무의미한 장소, '공간'에 가장 근접한 장소인 것이며, 여기서 트래비스가 느끼는 것은 '공허'다. 반면 도쿄는 문화적 외부자들에게 이미 의미로 꽉 채워진 장소다. 그들은 여기서 끼여들 여지를 찾기 힘들다. 이것은 트래비스가 느낀 '공허'와는 정반대의 정서이다. (트래비스는 가공할 공허에 맞서서 질서를 창출하고자 한다.) 공허는 장소가 공간화된 결과이고, 잉여와 소외는 장소의 배타성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요한 장소들은 대체로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호텔, 관광지, 그리고 도쿄거리다. 호텔은 유니버셜한 장소로, 어떤 면에서 뉴욕의 원격적 연장(extension)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남자 주인공에게 뉴욕-동경의 호텔은 자신의 job의 연장이다. 결국 동경까지 뻗친 소외성의 연장인 것이다. 관광지는 그야말로 장소 그 자체, 개성적 의미로 가득차있으면서 문화적 외부자인 인물을 밀어내는 장소이다. 여자 주인공에게 일본의 관광지는 그녀의 잉여성을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도쿄거리다. 이 장소는 뒤섞임, 혼성의 장소다. 여기서 만난 일본인들은 전형적으로 알려진 일본인들과 매우 다르며 의미심장하게도 두 주인공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자라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Translation -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경계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다른 것이 뒤썩이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급속도의 시공간의 압축을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공통 경험을 잘 반영한다. 우리에게 이 상황은 혼돈, 길잃음의 느낌을 준다. 제목 그대로 "Lost in Translation"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닌가 보다. 그 혼돈 속에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발견하니 말이다. 이 영화는 異文化간의 접속과 혼재가 심해지는 이 시대에 개연적인 사랑을 재치있는 감수성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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