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복거일 지음 / 알음(들린아침)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우상파괴적인 대중적 역사서가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데, 한홍구씨의 <대한민국사>와 함께, 한국인이면 놓쳐서는 안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홍구씨와 복거일씨는 비록 정치적으로는 서로 상반적일런지 몰라도, 진실에 대한 열정과 화해에 대한 희구에 있어서는 서로 동질적으로 보인다.

물론 몇 가지 논란을 일으킬 소지는 있다. 일제시대 조선의 경제는 이전보다 더 윤택해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최근 한국 경제사학계의 실증적 연구결과로 지지되고 있다. 이를 뒤엎을만한 반증도 찾기 힘들다. 식민지 시기 조선의 인구는 이전보다 증가한다. 출생률은 증가하고 사망률은 감소한다. 인구증가율은 일본의 증가율마저 앞지를 지경이었다. 지가가 상승했는데 이는 토지 생산성 증가의 증거이다. 철도망 역시 유래없이 빠른 속도로 확충되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근대적 제도의 상당부분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식된 것이란 점, 특히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식민지 경영의 계승이란 점 등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식민지 경영의 나쁜 점도 없지 않다. 경제적 성장과 달리 정치적 억압은 상당했다. 하지만 30년대 후반부터 조선 사회로부터 자치의 역량이 확대되었고 이런 노력이 일본 의회에 요구되기도 했다. 이점은 당시 일제 시대 정치적 환경이 완벽히 하향적 압제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여러 모로 이 책은 우리가 일제 시대에 가지고 있는 자연화된 상식들을 다시 생각하도록 돕는다. 이 부분에 대해 더 관심있다면 윤해동의 <식민지의 회색지대>라는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친일과 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회색지대에 자치를 위한 조선인들의 활발한 정치사가 숨어있다는 사실은 당신의 근대사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언젠가 은퇴하시던 민족사학계의 신용하 교수께서 학계에 일본계 지원금이 유입되면서 민족주의 사학을 좀먹고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신 교수님의 우려와 열정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학문적 비판이 아닌 듯 하다. 지원금이 어디서 나오든 어떤 학문적 결론이 피할 수 없는 증거들과 논증들로 이뤄진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진실을 잡아먹는 사태는 학문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자체에게도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책 자체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만이 있다. 하나는 인용문 번역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주로 영문 원문을 길게 달아놓은 것일까? 또 다른 불만은 책가가 너무 지나치게 책정된 듯 하다는 점이다. 대중적 역사서로 이 가격을 달다니 출판사에 실망이다. 그리고 '21세기 친일 문제'란 부제도 좀 억지스럽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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