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인 주경철씨는 그의 <테레지아스의 역사>라는 역사 에세이 모음집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씨리즈를 '일본 우익 작가가 일본 우익들에게 이야기하는 우익에세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아주 시대착오적으로 집어든 나 역시 그의 정의를 확인하는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해서 애석할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도처에서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노예제를 정당화하하며, 전쟁을 두 개성의 충돌로 겁없이 축약시키는 맥락없는 영웅주의에 도취된다. 로마 제국주의는 피지배민에게 관대했음을 설득시키려고 하고(이는 사실과 다르다) 암묵적으로 일본의 우울한 과거에 대해 회한을 드러낸다. 역사학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다. 지루하고 비루한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하며 현실을 차근차근 바꿔가려고 하기보다는 자폐적 상상 공간에서 무중력 유영하기를 더 좋아하는 어설픈 미학주의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나는 시오노 나나미를 통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남근적 제국주의 취향은 일본만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취향을 우리는 우리의 최대 우방 미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로마 제국에 대한 향수가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칭송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자기 반성을 약화시키는 재료로 거듭 사용되는 미묘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로마와 함께 시오노 나나미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