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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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 대화를 대체'하고 '선택이 아닌 진급하는' 삶을 살며 그 속에서 한 남자는 '동굴 속의 황제'로 즉위하지만 둘로 분열된 자아로 고통받는다. 그는 본연의 자기에는 무관심한 채 분열된 자아들 사이를 떠돌며 '비천한' 삶을 산다. 이것이 저자가 한국 남자로서의 자신의 '탄생' 과정을 면밀히 관찰한 끝에 얻은 결론이다.

이런 비천함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첫째는 신분사회의 감옥에 너무도 잘 순응해 온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가 이 감옥에서 터득한 생존 방식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에게까지 비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음은 더욱 비참한 일이다. 둘째는 그런 부모, 특히 아버지를 과감하게 죽여버리지 못한 한국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아버지(스승, 상관 등)를 사회로 이어주는 매개체로 이상화하고 그에 복종한다. 그들은 아버지를 통해 더 큰 사회의 수직적 사다리에 포섭되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들은 사회와 자신을 무매개적으로 맞세운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그렇게 비천함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나는 그 무엇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냥 자유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말이다. 어떤 것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말이다. 수직적 사다리에 포섭된 아들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할 자유는 없다. 그저 자기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자유만 있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세계는 오직 거대한 사디리 뿐이다. 그 밖의 광대무극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눈멀고 귀먹었다. 그럴수록 그들은 비천하고 공허해졌고, 그의 순종적 아들들은 그 비천한 공허함을 '아름답고 성스러운 질서'의 표상으로 착각했다. 그 표상의 숨통을 끊어놓지 않는 한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저 비천한 아버지들로부터 우리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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