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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몰락 - 미국 체제의 해체와 세계의 재편
엠마뉘엘 토드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서론 딱 두 줄에 이 책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과거에 우리는 미국에게 어떤 해결책을 찾곤 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신사적이고 개방적이며 해결책과 함께 비젼을 제시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덩치만 큰 말썽꾼이 되었다. 고립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시아 우선주의자들이 미국의 권력을 쟁취하자 미국은 갑자기 가장 거칠고 촌스러운 외교 행보로 나아갔다. 이로 인해 여타 문명국들은 거북함을 감추지 못했고, 잠재적 타겟이 되고 있는 일부 강대국들은 분노를 느껴야 했으며, 힘없이 말만 많은 소위 깡패국가들은 걸맞지 않은 린치를 당해야 했다. 찬란한 문명국들 사이에 홀연히 떠오른 촌뜨기 바바리안. 그들에게 미국의 지도력은 너무 과분한 역할이다.
저자는 기존의 반미주의자들에게 충고한다. 그들은 미국을 악의 핵심으로 파악하지만 동시에 유일무이한 파워로 다룬다. 그러나 미국의 힘은 공갈이란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조건과 일치한다. 미국은 악 혹은 공산주의, 전체주의로 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를 자임함으로써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가 도처에서 이룩되고 있는 상황에서(이란까지 포함)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옛 왕좌를 유지할 수 없다.
둘째 세계 대전 이전에 미국은 자기 자신으로 충분한 자급적이고 자율적 경제 속에 있었으나, 현재는 외부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이제 세계는 미국없이 살 수 있지만, 미국은 세계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세번째로 이는 서방 세계에 모두 통하는 것으로, 신진 민주국가는 더욱 민주적으로 변신하는 반면,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는 점차 과두제로 퇴화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평화를 가져온다는 기왕의 정설을 떠올려볼 때 전쟁(적 쇼)에 집착하는 미국의 행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의 퇴화현상은 미국에게 반복적으로 위기감을 심어주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그 위기를 변명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를 개발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대규모 국제 수지 적자 현상을 일컬어 미국의 경제는 세계의 소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류의 선전이다. 또한 미국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저자가 이름붙이기를) 연극적 군사주의에 몰두하게 된다. 만만한 놈을 골라 미국의 첨단 군사력을 전시하여 미국의 강함을 만방에 떨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만간 피터지게 싸워야 할 산유지역에 대해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이어서 때때로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아랍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미국의 이 지역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저자는 미국의 부상과 몰락에서 얻는 교훈을 얻자고 충고한다. 미국이 부상한 것은 그들이 군사주의를 거부하고 자기 내부의 내실(경제와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는 일)을 기하는데 있었던 반면, 미국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와 정반대되는 일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악순환의 고리에 외통수로 걸려들어 몰락의 가속도 페달을 밟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일본이 이런 미국의 자해적 꼬락서니를 답습하고 있다. 자기 경제의 붕괴 위기를 해결할 생각보다는 멀리 군대를 파견하면서 패전국의 설움을 극복하겠다는 발상말이다. 나쁜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던가? 우리마저 결코 이런 길을 따르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