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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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전에 아마존에서 이 책에 대해 미국의 전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인 뉴트 깅그리치가 쓴 서평을 본 적이 있다. 이 사람 다들 알만한 강경보수파다. 성향에 따라 누구의 글을 미리부터 판단한다는 것이 온전히 옳은 일은 아니지만 뭔가 시사적인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 책 <살육과 문명>을 보고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연상시켰고, 더 소급해서 부르크하르트가 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서 전쟁을 '개성의 충돌'로 묘사한 부분을 연상시키게 했다. 저자는 전쟁을 문화로 다루고 있다. 살육에 대한 상이한 문명적 제도가 어떻게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가라는 식의 인식은 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느냐라는 판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저자는 전쟁에서 정치경제적 배경이나 도덕의 관점을 배제하는 것이 전쟁사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라고 하나, 그것은 제대로 읽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그저그런 여러가지 해독법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동시에 전쟁을 피상적으로 '즐기게' 만드는 위험한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전쟁이란 서로 다른 (문화적) 개성의 충돌 정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냉전이 해체되고 세계화가 급진전되면서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반공이란 이념적 모토를 '문화의 충돌'로 바꿔달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북반부 유럽에서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한 신극우주의는 세련되게도 '유럽문화의 동일성 보존'이라는 모토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이들의 관점에는 자신들의 개성이 다른 자들의 개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발상이 숨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살육과 문명>에 강경보수파의 싸움개 뉴트 깅그리치가 장문의 서평을 달아준 것은 뭔가 아귀가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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