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종교 유교
가지 노부유키 지음, 이근우 옮김 / 경당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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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도덕체계에 가까운 것이라는 설명이 많지만, 이 책이 취한 관점은 <그렇지 않다>이다. 각각의 종교는 모름지기 고유한 生死觀을 보유하고 있다. 기독교는 부활영생, 불교는 윤회전생, 도교는 불로장생이다. 그렇다면 유교는? 공자는 일찌기 <괴력난신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반-초월적인 세계관을 피력했지만, 실상 유교적 관례들에는 제사를 통해 종교적 생사관이 배어나온다. 저자는 이를 <초혼재생>이라고 부른다. 죽은 영혼이지만 제사를 통해 (하늘에서 내려온) 혼과 (땅에서 올라온) 백이 위패(혹은 신주)에 깃들어 이승에 잠시 머물다 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유교의 종교적 패러다임을 통해 동북 아시아인의 도덕적 체계를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일본적 유교의 특색을 한국과 중국의 유교와 비교하면서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중국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패전 후 일본 사회에 당연시되어온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家-중심의 체제를 무조건 봉건적이고 구시대적인 유산으로 치부하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기독교적 유산이 뿌리내리지 못한 일본에서 개인주의를 모방하는 것은 방만한 이기주의만을 낳을 뿐이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저자의 <개인주의>에 대한 소견은 나에겐 좀 일면적인 것으로 비쳐졌다. <개인주의>가 과연 <기독교주의>만의 소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신과 개인 간의 단독적 계약에 의존하는 삶의 형태는 <개인주의>의 한 역사적 일면일 뿐, 반드시 그것과 동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독교주의> 외에 <개인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과학주의>, <이성주의>라고 본다. 이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주체를 필요로 했다. 바로 여기에 <개인주의>의 또 다른 강력한 원천이 있다. 따라서 일본에 기독교가 뿌리내리지 않았고 유교적 자취가 아직도 짙게 배어있으므로 <개인주의>는 일본과 어울리지 않으며 부작용만 일으킨다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현대의 일본인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과학적 근대인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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