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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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윤리, 자유

'두려움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두려움이 있으면 진정한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두려움은 에고를 전멸시킴으로써 사라진다.'

...... 마하트마 간디, [날마다 한 생각] 중에서 발췌

사랑과 윤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 토대는 '자유로워지라'는 무조건적인 지상명령이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고, 진정으로 윤리적일 수 있다. 필연성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자유로울 수 없고 동시에 사랑도 윤리도 그에겐 인연이 없다. 필연성 속에 속박된 사랑과 윤리는 기계적 인(그리고 습관적인) 반복운동에 불과하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에 빠진 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윤리적으로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랑과 윤리는 아무런 필연성도 없는 오직 무조건성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윤리를 필연성 속에 종속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랑을 운명으로, 윤리를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적 사랑이란 대개 정략의 가면, 규범적 윤리란 말썽을 피하려는 수단에 다름아닌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은 사랑도 윤리도 아니다. 사랑도 윤리도 아니면서 사랑과 윤리로 불리는 이런 것들은 도데체 정체가 무엇인가? 이것들의 정체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이 사는 집이 바로 '에고(ego)'다. 에고 에고,이 못난 자슥...

사랑과 윤리는 '불구하고'의 정신이요 실천이다. '불구하고' 사랑하며, '불구하고' 윤리적이려고 한다는 것은 바로 필연성의 연쇄고리를 몽땅 괄호 속에 쳐넣어버리고 생각하며 실천할 수 있다는 것, 즉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물체로 착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자신을 '물체'라고 여김으로써 무조건적 선택의 자유 앞에 있음을 망각하고자 한다. 망각하면 편하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에게는 사랑도 윤리도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는 걸어다니는 시체, 곧 '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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