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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
버나드 베일린 지음, 배영수 옮김 / 새물결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가들이 유달리 존경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투리 사료들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역사적 의미를 길어 올릴 때는 신비감마저 느끼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버나드 베일런은 미국 헌법 비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들을 세세히 좇아서 미국 혁명의 토대를 이뤄 놓은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밝혀 내고자 했으며 그의 이러한 시도는 정치사나 지성사에 있어서 베일런 식의 '공화주의'를 학적 공용어로 등록시켜야 할 정도였다.
베일런의 저서에 대한 경이감과 함께 언급하고 싶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미국 혁명의 해괴함이다. 우리나라 보통사람들에게 미국 혁명이란 영국이나 프랑스의 혁명과 별반 차이가 없게 보는 것이 다반사고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식민지 투쟁과 해방과 연관시켜 보는 잘못된 상식이 있다. 아주 잘 아는 것 같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미국관의 일면이다. 최근에 대테러전을 수행하는 부시의 언사들은 해괴했다. 부시의 연설들은 그가 아직도 교황이 봉건제후국가들을 순회하면서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던 바로 그 시절에 갇혀 있는 듯이 보였다. 나에게는 종교적 근본주의라고 욕을 먹는 이슬람이나 탈레반에 대해서 보다는 오히려 그런 미국에 대해 더 호기심이 생겼다.
도데체 미국의 정체는 뭘까? 김봉중의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라는 책을 집어들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소개받은 책이 이 책인데 정말이지 뿌리까지 뒤집어 훑고 있다. 베일런의 주장은 책의 초판이 나오던 시절 대세였던 나이브한 합의주의 사관 대신 서로 이질적인 것이 뒤죽박죽 뒤섞인 채로 얽혀있었음을 보여준다. 영국 휘그 좌파의 고전적(그리스-로마의 이상을 지향하는) 공화주의, 계몽적 합리주의, 영국 보통법 전통과 뉴잉글랜드 중심의 청교도 신앙, 그리고 반권위주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베일런은 미국에 다른 유럽 근대국가와는 다른 독특한 정체를 부여하는 듯 한데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그런 미국의 정치가 독특하기 보다는 후진적으로 보였다. 부시의 솔직담백하지만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연설들처럼 말이다. 뉴잉글랜드 청교도식 미국의 시초로 영구회귀하고 있는 듯한.... 가장 최첨단국의 최후진적 지향성...?? 묘한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