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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살인 - 범죄소설의 사회사
에르네스트 만델 지음, 이동연 옮김 / 이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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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도데체 정체가 뭘까? 추리소설이란 장르는 아무 때나 유행하는 장르가 아니다. 어떤 특정한 역사적 맥락하에서 그 유행은 번듯하게 설명되는 듯 하다. 맑스가 말한대로 '추리소설은 신흥중산계급의 아편'이라거나 교양문화론자들이 비난하듯 '현실도피성 오락물'로만 여기는 것은 무언가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물질적 팽창이 거듭하는 곳에 증권 붐이 일듯이 중산층이 번성하는 곳에 추리장르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저자 만델은 '부르조아 사회가 범죄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추리소설은 문학사의 발전과정 속에 있다기 보다는 사회적 반응물로써 예술로서의 자율성은 심각하게 부실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놓여진 사회의 정체를 파악하는데는 더 없이 요긴한 도구가 된다. 이 특정한 장르를 통해 새롭게 부상한 중산층은 그들 계급이 욕망하는 것을 상상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산층은 귀족계급에 대해서는 퇴폐성을, 하층계급에 대해서는 폭력성(혁명성)을 비난해 왔다. 중산층에 의해 세워진 현대의 우주적 질서를 저해하는 이 두 계급은 추리소설 속의 합리성(혹은 합리적 기업정신)의 화신, 즉 중산층의 이념성을 대변하는 성격을 지닌 탐정에 의해 발가벗겨지고 단죄된다.
오늘날 추리소설은 범죄소설 쪽으로(특히 영화 쪽에서 그런 경향이 농후한데) 더 기울어져 왔다. 탐정 대신 경찰이 영웅시되고, 사설탐정의 두뇌 플레이 대신 거대한 국가 기구와 그 으리으리한 장비들이 대신하게 된다. 또한 국가와 범죄의 결탁도 생긴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 범죄소설은 부르조아 사회의 정당성을 세뇌하는 힘을 잃게 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조폭영화가 붐이다. 경찰은 바보처럼 나온다. 국가 공권력은 허술하고 위선적이고 모순적으로 그려진다. 또는 반대로 국가제도 자체가 조직폭력단으로 은유되기도 한다. 국가와 조폭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사이 조폭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건 어떤 현상일까? 억압된 전복의지가 우회적으로 표출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리가 보통 인식하듯이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