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다면, 어릴 적 독서는 쓸데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렸을 때 자기가 읽었던 책은 쓸데없다며 그 까닭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어른들과 싸워야만 합니다. 스스로가 분명히 확인하지 않은 '소문'에는 따라가지 않는 것도 싸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다. '배울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책도 있지만 이 말이 역설적으로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만큼 어려서 깨우친 바를 늙어가면서도 온전히 지켜내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또 어떤 한 켠에서는 저 사람은 아직도 '어린애같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유치원에서 배운 바와 영원히 결별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불쌍한 족속들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내 주변에서도 다양하게 반복된다. 대학 3학년 쯤 되어서도 '정의'와 '민주' 혹은 '인권'에 대한 사회과학책을 읽고 있으면 쉽게 듣는 소리가 '너 아직도 그런 책 보냐'다. 자기는 졸업했다는 소리다. 글쎄 뭐로부터 졸업했을까? 내가 보기엔 참 안스러운 졸업이다.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 처럼 의미없는 생존도 살 가치가 없다. 그건 좀비의 삶, 숨쉬지만 죽어있는 삶일 뿐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야기하는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는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들려줘야 할 이야기는 아니다. 주변에는 온통 배울 것 천지다.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배움은 경쟁을 위한 것만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오에의 말처럼 타자와의 만남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타자와의 만남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배움의 도정에서야 비로소 자립하는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홍수에 떠내려 온 강단있는 소녀를 통해 얼핏 보았던 것 처럼 어떤 난관이나 혼돈 속에서도 굳건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자기 위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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