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개 '아우라'와 '기술복제시대'란 말일 것이다. 영화나 현대예술을 논하면서 그의 이 두 개념은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게 된다. 그 개념이 빠지면 왠지 중간에 이빨이 빠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허나 그렇게 자주 인용되다 보니 본래 벤야민의 모습은 개념의 상투성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듯 하다. 그러다 보니 '벤야민? 이제 지겹다 집어쳐라~'란 식의 반응도 나올 정도인 듯 하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쉽게, 그리고 일면적으로 이해하면 그만큼 빨리 폐기처분되게 마련이 아니던가? 벤야민을 좀 더 피부에 와닿도록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줍잖은 개론서나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일 수 밖에 없는 논문들을 들춰보는 것보다 이 책을 집어드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이뤄질 수 없는 운명'이란 식의 비관주의적 태도는 어디서 연원한 것일까? 잘 나가는 유대계 중산층 출신이면서도 그런 부모를 경멸하면서도 또 그들에 빌붙어 살아가던 벤야민의 모습... 골동품에 편집적인 애착을 가지고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굴하는 삶의 고고학자로서의 모습... 웬지 모르게 씁슬하고 전적으로 숭배하기 힘들지만 자꾸 눈이 가는 비평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서 이 세상의 감각을 맘껏 즐기면서도 저 바깥 세상에 대한 눈을 거둬들일 줄 모르는 종말론자... 그 다층적인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