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소에지마 다카히코 지음, 신동기 옮김 / 들녘 / 200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에서 책을 보고 그 자리에서 골라 구입한 후 카페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얼마간 읽다가 다시 서점으로 가서 다른 책으로 바꿔버렸다. 이유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확도와 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선 저자가 영어학습서나 쓰던 완전 아마추어라는 사실부터 미덥지 않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제거하고 보려고 해도 이 책은 너무 편협하다.

저자의 시선은 미국의 주류 와스프, 그 중에서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이적한 소위 '자유의지론자들'과 동일시되어 있다. 그는 강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미국의 여러 정치적이고 지적인 세력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위험분산적 관점에서 세계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매도되고, 사회복지와 어퍼머티브 액션을 주장하는 주장들도 공상적 이상주의로 편리하게 환원된다. 다각도로 모색되는 시민운동집단도 부도덕한 집단으로 간단하게 매도된다.

저자의 '자유주의'는 곧바로 왜곡 역사교과서를 간행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자유주의 사관 연구회'를 연상시킨다. 이들의 극단적 자유주의는 보편을 인정하지 않으며 아전인수격인 편의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얘네덜 식의 '자유주의'란 '주관주의' '상대주의' 그리고 주관을 절대로 만드는 '무력 우선주의'에 불과하다.

책에 분주하고 산만하게 이 사람 저 사람의 사상이 굴비엮듯이 엮이고 생선토막처럼 잘려서 전시되는데, 정말 딱하다. 한나 아렌트가 스탈리니즘을 나찌즘과 동일시해서 영미계 신보수주의자들의 사랑을 구걸했다거나, 반대로 하이데거나 칼 슈미트는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는 식의 서술을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다. (아렌트는 이미 자신의 저서가 신보수주의자에 의해 사회주의나 맑시즘의 포기로 오해되는 것에 대햇 성토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논조다. 썬글래스에 가죽자켓을 입고 주먹을 불끈 쥔 마초 사진으로 광고하는 산케이 신문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