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의 정신의 연원은 자생적 근대화론을 펼치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하는 실학이나 영정조시대의 상공업의 흥성과 같은 곳에 있기보다는, 일제시대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을 듯 하다. 만주군관학교에서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하고, 그의 정신적 수하들이 80년대까지 장악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외상후 증후군들이 그 명징한 예들이 아닐까?

노다 마사아키는 이런 군국주의 정신의 특성을, 첫째 집단에 매몰된 인간, 그래서 집단으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독립시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성, 둘째, 출세에만 눈이 먼 상태에서 무슨 일이든 무신경하게 해치는 '강한' 인간의 과잉 적응, 세째, 자기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복종으로 도피하는 '강한' 인간의 약한 심리구조, 네째 주어진 슬로건에 비판적인 반성없이 휩쓸리는 정신적 취약성, 다섯째,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심리 속에서 다시 곱씹지 못하는 매마른 심리, 여섯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을 하나의 개념적인 도구 혹은 물질적 대상으로 환원시키는 사고방식 등을 꼽는다.

여기에 권력의 의도에 의한 선전선동이 결합되면서 이 집단은 놀라운 응집력과 동시에 끔찍한 폭력성을 키운다. 이런 태도는 단지 난징이나 광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우리의 근대화, 개발독재로 명명되는 박정희식 근대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성찰없는 근대화의 모습이고,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국가주의적 근대화를 거친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나라에서 질서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엘리트들에 의해 철저하게 교육되는 것이지, 사람들이 서로 부딧혀 가면서 스스로 형성해가는 문화가 아니다.

일본이나 독일 사회의 장점이라고 찬양되는 준법정신이라는 것 뒤에 숨어있는 폭력성에는 인간을 부속으로 최소화하는 문화적 무의식이 숨겨져 있으며, 이런 무의식이 바로 우리의 근대화 심성이었다. 우리는 그런 근대화심성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자신을 아무런 성찰성없이 몸소 부속으로 내던졌다.

마사아키는 이런 군국주의적 심성을 깨부수는 첩경은 '감정회복'에 있다고 본다. 감수성의 회복은 인간을 기계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군국주의적 마초맨의 시각에서는 '약해' 보이는 인간은 거꾸로 '강한 인간'을 치유하는 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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