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문학 동문선 현대신서 37
로버트 리처드슨 지음, 이형식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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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상문화에 관련된 담론들이 홍수를 이루면서, 영상예술를 문학과 같은 언어예술과 독립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 몸, 육감, 이미지, 멀티미디어 등과 같이 선언어, 선관념적인 차원이 우리 앞에 있고, 영화니 영상물이니 하는 것은 그런 선관념적 차원으로 우리의 인식을 끌고 간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이미지는 언어와 관념으로부터 해방되어, 관념적 질서에 갖힌 인간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인 듯 하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다.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와 알렝 레네의 [밤과 안개]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히틀러와 나치즘을 서정적 시각주의로 찬양하는 작품인 반면, 후자는 반대로 지금까지 나온 가장 실날한 나치즘 비판영화이다. [의지의 승리]가 시각과 몸에 강력히 호소하는 영화, 그러니까 그전까지의 관념과 언어로부터 막무가내로 풀려나가도록 의도한 영화라면, [밤과 안개]는 자극성있는 시각성 보다는 원전 소설에 더욱 충실해 있고, 영화의 시각적 면은 문학적인 면에 엄격하게 종속되어 있다. 물론 시각성이 문학성과 관면에 꼭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미지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우리는 판단을 해야 한다. [의지의 승리]가 주는 시각적 자극과 판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나는 영화가 기술로 환원될 때, 영화가 이미지로 축소된다고 생각한다. 나치즘이야말로 인간을 기계와 기술로 환원시킨 대표적인 체제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영화를 기술로 환원시키는 또 다른 조류는 헐리우드 영화다. 스타일은 해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그 이데올로기적 정향과 소외성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스펙터클에 성공할수록, 이미지만의 영화로 이해될수록 영화는 기술로, 그리고 무성찰성으로 떨어진다.

영화와 문학은 그래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문학은 인류가 삶의 영역에서 성찰해온 유산들이 고스란히 담기고 투쟁해온 영역이며, 언어란 바로 그런 투쟁들의 기록이고, 또 우리가 새롭게 써야할 투쟁의 그림책들이다. 하지만 영상문화의 폭팔과 함께 이미지의 독자생존을 갈구하는(아마도 문학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신의 이론적 헤게모니를 세워보겠다는 시도인 듯) 지적 운동과 그에 현혹된 시네키드들에게 영화란 결코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이 아님을, 여러 차원의 문화들이 겹친 결과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데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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