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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4
박현수 지음 / 책세상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한 영화 비평가가 한국 대중영화에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편지], [하루] 등과 같은, 거의 한국영화 속에서 하나의 장르처럼 굳어져 가는 양식의 영화들이 생겨났는데, 그 특성을 들어보자면, 가족 상실, 사회상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집착과 같은 것이고 할 수 있지요.
혹자는 영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가족 역을 할 사람의 출연료 절약, 사회적 배경 말소를 통한 세트비 절약, 이도 저도 다 생략디되어 싱거워진 상황을 죽음이란 쇼킹한 충격으로 기적적으로 극복함^^) 그랬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 비평가의 말처럼 그것이 한국 관객에게 씨가 먹힌다면 그 기저에는 어떤 집단적 심리 상황에 깔려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비평가는 그 정향이 일본 문학계 특유의 사소설적 트랜드와 너무도 유사하다고 간파했지요.
좀 사적이면 뭐 어떻냐? 감동만 주면 되지 않느냐? 누가 뭐랍니까? 하지만 한 단계 더 깊숙이 생각해 보자는 거죠. 이 책은 사소설적 정향이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따져 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일본 근대 소설의 기원이라는 명치유신 시절 전후의 사소설들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섬세함의 미학에 빠져든 것일까? 이것은 바로 천황제를 정점으로 한 관료제가 사회적인 영역을 모두 흡수해버린 상황에서 근대적인 자아가 종국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막다른 길이 아닐까?
이것이 핵심이지요. 즉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다른 보통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해결해내는 영역을 구성해내지 못했을 때, 이런 사람들에게 남는 자율적인 영역이란 결국 개인의 심미적 주관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지요.
즉 시민의 사회적 무능력이 그 일본적 섬세함의 기초가 아닌가 하는 의심입니다. 이는 바이마르와 나치시절의 독일 사회에 대해 비판의 칼을 들이댔던 한나 아렌트의 시각과도 일치합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이는 '무사회적 고립자'들의 향연입니다. 그리고 이 향연은 사회적 무능력의 방증이며, 결국에는 독일식의 집단 영웅주의나 일본식의 천황제하의 가미가제 정신에 나약하게 굴복할 수 밖에 없겠죠. 극단적 심미주의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하며 외친 것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었다는 점을 함께 상기할 때 이 무사회적 고립자의 섬세함의 미학은 모골을 송연케 하는 잔인성의 이면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