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신입생들에게서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입학하자마자 도서관에 와서 토익책과 자격증책을 갈아먹느라 혈안이 되거나, 아예 작정하고 새벽 출근증을 끊으며 고시공부로 자신을 내던지는 아이들의 비율이 자꾸 늘어나고 있지요. 글쎄... 무엇을 위해서 저러나?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습니다. 그 살기 힘든 시절에 넉살좋게 철학을 공부했고 비록 그 철학으로 밥 먹고 살지는 못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그리고 긍정적이면서도 여유롭고 호탕하게 사신 전시륜 선생님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여유를 더욱 더 가속적으로 잃어버리는 듯 합니다.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전쟁인데 무슨 얼어죽을 여유냐고 콧방귀를 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꼼짝없이 '돼지'입니다. 이 말은 작고하신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의 것입니다. 이왕 읊은 김에 김현의 글 '여유있는 생존'에서 몇 자 옮겨보지요.

'나는 여유를 사랑한다. 세계가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나는 여유를 사랑한다. 소설을 쓰는 것이 돈이 잘 벌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를 쓰는 사람들의 여유를 그러므로 나는 사랑한다.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여유를 나는 사랑한다. 위태위태한 의식의 혼란 속에서도 요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를 나는 사랑한다... 물론 나는 그렇지 못하게 하는 많은 원인들이, 환경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유를 좋아한다.'

여유는 어느 때 오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멀찌감치 떨어져 볼 때 옵니다. 무언가 맹렬히 좇고 있는 자가 있다면 여유는 내가 왜 그걸 좇고 있는가를 보게 해줍니다. 무언가에 맹렬히 좇기고 있는 자에게 역시 여유는 내가 왜 그것에 좇기고 있는가를 보게 해줍니다. 여유가 없으면 이유도 모르고 좇고 좇깁니다. 그것은 구정물 속에서 건더기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곤죽이 되도록 싸우는 돼지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우리 대학에는 이 여유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여유는 취업한 다음에 생각할 일이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글쎄요... 제가 감히 묻노니 과연 당신이 취업한 후에 한 호라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찾을 수 있다면 당신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가 전투적으로 삶에 임하는 이유는 다를 것 없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행복의 노예가 되어 무엇이 우릴 행복하게 하리라고 소문을 내면 그것에 불나방처럼 달려듭니다. 그것을 먼저 쟁취하려고 모든 행복을 전폐하고 맹렬한 레이스에 아낌없이 몸을 던지지요.

그러나 전시륜 선생은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삶이 의당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우연히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행복은 영광스런 전리품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일 뿐입니다. 손님이 오면 즐겁고 떠나면 다시 오길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안달복달하며 가슴조일 이유가 없죠. 덕택에 귀한 인생론을 배웠습니다.

전시륜 선생님은 그 자체로 담대한 김현 식의 '여유'의 화신입니다. 세상에 번드르한 영웅들과 위인들이 넘쳐 나지만 자기 삶에 대해 이렇게 담대한 여유를 보여주면서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돌파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 듯 합니다. 왜 달리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달리는 레밍즈떼 같이 전락하고 있는 우리들이여, 이 책을 통해 뭔가 신선한 삶의 전회를 얻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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