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강돈구 지음 / 이학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해석학은 물론 철학 자체에도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잡은 이유는 평론문들을 자주 접하면서 느끼게 되는 그 기만적인 자의성들 때문이었다. 물론 성실하고 일관된 구축을 통해 나름의 독특한 비평 방법론과 가치관을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분들도 많지만 요즘 들어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은 그저 작품을 겉치레 수사학과 외국 비평이론의 전문어로 버무려서 그저 '설명'하는데 그치는 걸 자주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말대로 어떤 철학자나 문학이론가가 이런 소릴 했네 하면서 그 이론을 개설하고 그 개설된 이론을 작품에 어떻게 해서든 꿰어 맞추고 나서는 어떤 음미의 여유도 없이 성급하게 결론으로 달려가서는 이론을 추켜세우는 건지 아니면 이론을 구체화한 작품을 추켜세우는지 구분이 안가도록 끝맺는 일이 자주 보인다. 아직 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나의 문제에 해법을 제공할런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힘들지만 궁구해 볼만 한 주제를 던져 주었다.

저자 이강돈은 가다머 등에 의해 슐라이어마허가 낭만적이고 주관주의적인 해석학으로 오해된 바를 바로잡으면서 슐라이어마허는 심리적 해석 뿐만 아니라 문법적 해석도 중시했으며 이 두 해석 사이의 상호교호적인 관계를 통해 변증법적 해석방법론을 추구했으며 이를 통해 특수해석학의 한계에 머물러 있던 보편적 해석학을 최초로 정초한 사상가로 다시 평가하고 있다. 해석이란 행위가 단순히 주관적 인상의 문제가 아니라 변증법적 대화를 통한 보편으로의 전진이라는 점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책의 말미에 가다머와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을 비교한 논문도 볼만하다.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의 인식론적 해석학이라면, 가다머의 그것은 (하이데거의 영향 속에서) 존재론적 해석학을 주장한다. 존재는 인식보다 크다. 따라서 인식의 조건을 형성하는 존재의 문제를 보지않고서는 그 해석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하이데거는 이해를 단지 '인식'이 아니라 존재양식으로 보고 역사적 존재의 이해를 해석함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가다머와 슐라이어마허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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