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 철학 동문선 현대신서 7
에릭 매슈스 지음, 김종갑 옮김 / 동문선 / 1999년 1월
평점 :
절판


'철학'이면 '철학'이지 도데체 왜 '프랑스 철학'인가? 철학이 보편성을 담는 학문이라면 도데체 프랑스만의 철학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는 소리인가? 분석철학적 경향이 농후한 영미계통의 철학이라면 철학의 국적을 따지는 것은 넌센스처럼 여길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철학은 다른 나라의 철학과 달리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푸코가 가장 심각하게 영향받은 사람은 철학자라기 보다는 블랑쇼나 바따이유같은 소설가와 비평가들이다. 사르트르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소설가이다. 영미철학자들은 자신의 나라에 사르트르를 소개할 때 '소설가-철학자'라고 소개하면서 은근히 그를 폄하하는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 철학은 문학적 전통과 질기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걸 자랑으로 생각하고 문학과 예술의 정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철학은 저급한 철학이라고 여긴다.

영미권의 프랑스철학은 철학자들이 아니라 비평가들과 문학이론가들에 의해 수입되었고 과시소비적 행태와 맞물려 지적 스노비즘의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영어권의 동향에 민감한 한국의 기지촌 지식인들은 이렇게 알맞게 데코레이션된 이론을 써머리 형태로 판매했다. 그게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 책은 영미권의 사상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쓴 프랑스 현대 철학 입문서이다. 비평이론가가 자기 입맛에 맞게 버무린 작품과 다르게 분석철학적 전통 속에 있는 자신의 입장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프랑스 철학의 전통의 내적 충동과 변천을 객관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한다. 저자가 말한대로 21세기에 가장 흥미로운 철학이 분석철학과 프랑스철학의 전통이 만나는 지점일 것이라는그의 추측이 옳다면 이 책은 훌륭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최근 레이 몽크의 비트겐쉬타인의 전기가 새로 번역되었다. 비트겐쉬타인하면 분석철학의 원조로 영미철학의 아버지나 다름없다. 한동안 비트겐쉬타인은 그들의 아버지로, 다른 쪽에서는 부르조아의 현상유지적 철학전통의 한 아류로 폄하되기도 했으나 레이 몽크는 그의 철학이 궁극적으로 윤리와 종교, 예술의 문제로 이어져 있음을 설득력있게 밝히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이 책과 분석철학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 어떤 비젼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게 요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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