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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침묵이 말 사이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말이 침묵사이에 있는 것일까?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전자가 맞는 듯하다. 침묵은 말 사이에 있는 참을 수 없는 불안의 영역이다. 그러나 저자 막스 피카르트는 이 말을 '소음'이라고 말한다. 침묵을 단순히 말없음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도 결국 소음으로 전락시킨다. 그 사람은 불안을 밀쳐내기 위해 끊임없이 소음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침묵은 말이 있기 이전부터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창세기에 존재들은 '- 있으라'하는 로고스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인간에게 로고스의 진정한 모습은 침묵이었다. 신은 존재를 내어놓고 존재에 침묵을 그려넣었다. 일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순간, 말과 침묵사이의 선후관계와 포함관계, 위계관계는 뒤집어진다. 그리고 이 침묵의 존재론적 양태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쉽사리 함정에 빠져든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나는 ...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가 바로 타자라고 했다. 타자는 침묵한다. 대신 타자를 힘있는 자들이 대신 말해준다. 그들은 타자의 침묵 사이에 변변치 않은 말들을 끼워넣고 그들을 도매급으로 정의해버린다. 침묵을 배워야 한다. 침묵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말을 소음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