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무엇인가?
앙드레 바쟁 지음, 박상규 옮김 / 시각과언어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상 바쟁은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애매성의 철학'에 심취했던 흔적을 그의 리얼리즘 영화론으로부터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가 현실에 대한 애매성의 의식을 영화에 되돌려 주려고 한 까닭은 적어도 우리가 사람들에 관해 내리는 판단의 의미에서 볼 때, 실재는 궁극적으로 애매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애매성은 몽따주에서는 불가능한, 롱테이크(혹은 미디엄 롱테이크) 숏 스타일에서만 오직 가능한 만큼, 몽따쥬보다도 롱테이크 스타일이 보다 더 진실되게 현실을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인간 심정의 궁극적인 신비'를 꿰뚫어, 적어도 타자를 판단하고 해석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하는 실존적 현상학의 태도가 영화 기법에서 '편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해석 형태인가 하는 회의로 연결되고 있다.

바쟁은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들, 이를 테면, 스트로하임, 무르나우, 플래허티 등도 역시 몽따쥬가 아니라 롱테이크 구성의 활용을 통한 '현실' 공간의 연속성을 긍정한 공간적 리얼리즘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바쟁의 실존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는 오늘날 속칭 예술영화라고 불리우는 카테고리에 자주 적용되어 왔다. 그래서 무엇이든 무섭도록 상투화시켜 버리는 문화아이콘 수입국인 한국에서 '롱테이크=예술=거장'이라는 등식으로 천연덕스럽게 적용되기도 했었다.

때때로 어떤 영화학자는 이런 판에 염증을 느끼고 모든 롱테이크에 침을 뱉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잘못은 깊은 성찰없이 껍데기만 차용하는 수입업자들과 허영심많은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지 롱테이크와 바쟁의 에토스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 바쟁의 글을 한 번 진지하게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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