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나쁜 점만...

우선 편집의 불만 -> 쉬리 때와 마찬가지로 스펙터클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심리적 발전 과정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어 부자연스러울 정도다. 이는 <쉬리>에서도 고스란히 보였던 단점...

둘째 이데올로기적 균형의 문제 -> 키타조센의 사람들은 한 유형으로 단순화된다. 그냥 잔인한 적이다. 쉬리 때도 마찬가지다. 북조선 사람들 중에서 인간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기껏해야 남한 사람에 의해 어느 정도 감화된 인물들 뿐이다.

가족과 전쟁을 대비시키는 일의 맹점 -> 한국전쟁은 단순히 가족을 파괴한 전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전쟁이고 민족통일전쟁이고 국제전이고 어떤 면에서는 내전이기도 했다. 물론 그걸 다 영화 속에 담아내면 그 감독은 천재겠지만... 여하튼 이 영화는 그런 모든 시각들을 버리고 가족과 전쟁을 대비시켰다. 그리고 전쟁 이전은 평화를 전쟁 이후는 잔혹과 슬픔으로 그린다. 그러나 전쟁 이전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이 전쟁 이전의 혼란을 제외시킨 것은 의도했든 안했든 이데올로기적 균형감각을 상실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가족과 전쟁의 대비에 기초하고, 전쟁의 피상적인 이미지를 주로 강조한 영화다. 한국전이 무슨 전쟁인지 혹은 한국전만의 특수성 따위는 그려지지 않는다. 유럽의 어느 전쟁으로 바꿔도 내용상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역사를 기억하거나 배운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쁜 말만 했다. 일부러 그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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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0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2-1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빠기 2004-02-1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나쁜 말만 할 수 있는, 어떤 이에게는 나쁜 말밖에 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간달프 2004-02-2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쟁의 코드가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니까"라고 예단하고 서사 영화가 필요로 하는 극적인 요소를 깔아뭉갠 것이 이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의 내적 구조보다는 외부적 환기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자 강점같아요. (예를 들어 형이 광적으로 변신하는 심리적 과정이 너무 허술하게 짜여져 있지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긴장(과 해소)은 (영화 내적인) 극적 긴장이라기 보다는 이미지 폭격을 통한 긴장이거나, 외부의 환기에 의존하는 긴장이라고 봐요.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눈물과 함께 피곤함이 몰려오지요. 나로썬 이 영화가 (역사적으로 나쁠 뿐더러) 영화적으로도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 힘들군요.

간달프 2004-02-2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규 영화는 모두 봤지만, 언제나 느끼는 것은 그는 극영화(feature film)보다는 광고나 뮤직비디오 쪽에 더 재능이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 혹은 나도 헐리우드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과도한 집착에 길을 잃은 감독이라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