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반론 : 총체적 역사이해가 중요
주익종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2004년 01월 30일   김인호 경성대

▲근대한국의 공업화는 식민지라는 건축물 위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경성방직 모습. ©
본 서평이 호리 가즈오 교수의 연구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빠져있어서 의미없다고 반대한 글일까. 아니면 일방적인 수탈론을 옹위하고자 호리 교수의 연구를 매도하려는 음모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주교수의 반비판문은 대단히 경솔하다. 서평자의 32매에 달하는 서평에서 일부가 신문사에서 논점중심의 논의로 편집되어 자칫 호리교수의 연구성과 중 긍정적 부분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이다.

하지만 서평의 골자는 실증의 문제보다는 호리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이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 공업화 찬양이나 그동안 일본측이 자행했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무책임성을 합리화할 가능성이 높은 연구라는 점에 대한 우려가 담긴 것이다. 

왜 하필 동아시아 담론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한국사가 분명 세계사적 피조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왜 유독 동북아의 발전에 시각이 경도되어 동아 삼국간의 민족적 국가적 모순구조가 사장되고 수탈적 제 관계가 화려한 성장기조 속에서 방치되어야 하는지 그것에 관한 저자의 저의를 의심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기본 도리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한 연구인지도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일본인이 자행했던 식민지배의 긍정적 측면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했는지 아니면 현 동북아 경제 발전의 원형을 식민지 지배관계에서 확인했다는 사실을 전도하기 위한 것인지 확실하게 답변을 줄 필요가 있다.

만일 서평자가 실증적 연구성과를 무시하는 논지로 일관했다면 일본에서 많은 사실탐구에 나서고 있는 한국학자들을 매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인 학자의 우수한 성취는 많은 감화를 동반하며 그런 연구성과는 우리가 충분히 섭취하고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증과 화려한 자료복원에 현혹되어서 역사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제약을 받을 수는 없다. 물론 오렌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나는 오렌지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은 단순한 동호회 잡지가 아니며 경제학자를 위한 경제론만이 아니라 식민지 역사라는 타이틀에서 존재하는 나름의 역사서이다. 그리고 역사라는 이름을 단 이상에 역사적 각도에서 비판될 이유가 있다. 나아가 역사서는 시대적 과제 혹은 사회적 당위성과 긴밀히 호흡을 같이 해야 하며 과학적 역사의식이 연구의 밑바탕에 은근히 깔려서 연구되고 작성되어야 한다.

바른 역사 저술은 시대적 과제와 불가분 연관할 수밖에 없고, 바른 역사의식을 배제하고 존재할 수 없다. 이병도류의 역사연구가 욕먹는 이유는 실증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의미를 외면한 연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널리 불리는 대중가요 노래 한 꼭지도 지금은 인기순위로 그것을 평가하지만 언젠간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경제, 정치는 정치로 파편화된 역사는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길 원한다. 그러므로 섣부른 동북아 담론은 나름의 진척과정에서 주변의 학문성과를 참고하면서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호리 교수의 연구에 대한 역사학적 평가는 기본적으로 그의 대단한 실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에 대한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글에 따라서 민족이 빠지고, 역사의식이 빠진 글도 존재할 수 있고, 특별한 실증만을 담은 연구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글을 모두 서평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한 서술 의도를 밝히고 작성된 논문이며, 그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평가는 정당하다.

서평자가 저자의 역사의식을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저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귀결을 추적한 결과이다. 분명히 호리 교수는 동북아 담론의 원형을 제공하고, 지역사 일국사의 탈구성과 모순을 동아시아적 틀 속에서 용해하여 한반도의 20세기 왜곡된 역사를 희석화시키려는 연구로 귀결되고 있다. 화려한 실증의 용광로 속에 우리 학자들이 하지 못한 치밀함이 비록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열린 마음 그리고 차이를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정신은 필요하다. 앞으로도 일본에서의 연구성과 또한 차분하고 겸손하게 그 수준 높은 실증성에서 얻을 것은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종합적 학문이며 경제적 측면의 식민지사의 일부분에 대한 집착이 다른 모든 총체적 역사의 잘못된 이해를 동반할 가능성도 한국의 역사학자라면 같이 고민해야 한다.

주 교수가 진정 역사란 무엇인가를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학자라면, 서평자를 천박, 자질, 공연한 트집 등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서평의 내용에 대하여 구석구석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아가 저작의 어떤 특정한 장점만을 이해해 달라는 태도는 대단히 소아적이다.

그리고 출판된 저작의 역자 서문에서도 역자 자신의 논지를 보다 분명히 말해주는 친절도 있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일본인학자에 대한 동경과 벅찬 희열로 글이 옮겨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무엇을 위한 연구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역자는 호리 교수의 연구에서 어떤 감화 받은 것 같은데 마치 100년전 나라 판 친일파가 했던 행실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놀랍기조차 하다. 왜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는 자신의 논리를 설파하는데 늘 일본학자들의 응원을 받아야 힘이 나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역사학자는 그 저의를 알고 있기에 늘 그들의 혀가 두려울 뿐이다.

김인호 / 경성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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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 제국주의 비판 빠질 수 있다
김인호 교수의 서평(교수신문 296호)을 읽고

2004년 01월 30일   주익종 숙명여대 

필자가 번역한 교토대 호리 가즈오 교수의 저작, '한국 근대의 공업화'(전통과현대 刊)에 대한 경성대 김인호 교수의 교수신문 서평(2003년 12월 15일자)을 접하고, 필자는 서평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 한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의 연구성과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김 교수의 서평이 연구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주관적이며 부당한 폄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학술연구자도 궁극적으로는 입신양명을 목표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술연구란 그 이전의 선배들이 쌓아올린 지혜의 건축물에 새로운 벽돌 한 장을 더하겠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여러 해 동안 연구자가 열의와 정성을 갖고서 수백, 수천 조각의 이론과 사실의 편린들을 모으고 짜 맞추는 노력을 통해서만 하나의 제대로 된 연구서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진지한 학술연구에는 동학들이 배워야 할 것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저작물을 소개하는 서평이란 그 책의 연구사적 가치(그 벽돌이 건축물의 어디쯤 있으며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고, 또한 향후의 계승 혹은 극복의 과제(새 벽돌을 어디쯤, 어떻게 얹을 것인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호리 가즈오 교수의 저작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그가 근대 한국의 공업화라는 큰 주제에 관해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의 10여년간 기울인 땀과 정성의 결정체다.  식민지기의 공업화에 관한 종래의 연구가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겠다는 목표 한 가지에만 몰두하여 심층적인 분석 및 함의의 도출에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반면(단적으로, 번듯한 연구서 한 권 없다), 이 책은 20세기의 세계사에서 두드러졌던 동아시아 역사의 역동성에 주목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단순히 한국을 수탈하고 파탄시킨 것은 아니잖은가 라는 문제의식에서 치열한 실증작업을 통해 탄탄한 성과물을 내놓았다.

"치밀한 실증분석 작업을 매도해서야..."

그의 주장의 요점은 일제하 한국이 급성장하는 일본 경제권 안에서 그 영향을 받아 상품화 및 시장경제화, 근대 기술 및 지식, 제도의 도입을 경험하면서 사회 근저에서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장이 진행되었으며, 현대 한국의 공업화 및 경제발전도 그 큰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만 본다면, 어느 연구자의 표현대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이러한 주장이 일찍이 전례 없는 방대한 자료조사 작업과 치밀한 실증분석 및 탄탄한 논리 종합 작업을 거친 것임을 확인한 후에는 일단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의 연구에 대한 국내 학계, 특히 한국사 학계의 평가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딱지 붙이기 식의 매도 일변도이다. 많은 한국사 연구자들이 어찌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할 수 있는가라는 원초적 물음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이런 연구를 읽어볼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본다. 이런 태도에서는 본격적인 검토 작업도, 그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필요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자기파괴적이다.


이번 교수신문의 서평은 전형적으로 그러한 경우이다. 교수신문사는 호리 교수의 금번 저서가 ‘최근 경제사분야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국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강력한 해외 원군’이라 소개했으며, 김 교수는 본문에서 이 책이 ‘식민지근대화론의 최신 논의를 집약한 저작’으로서, ‘기왕의 근대화론에서 보이는 성장론을 재탕’한 것이며 ‘식민지성이 거세된 식민지연구’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우선, 기본적인 정보 전달부터 제대로 하자. 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최신 논의’를 집약한 것이 아니라, 그 원조에 해당한다. 이 책은 20년 전에 시작되어 10년쯤 전에 완성되어 출간된 저서이다.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참신성이 없는 저작을 본인이 굳이 번역한 것은, 이 책이 이제는 역사 전공의 학부생, 전문적 연구자들, 그리고 한국경제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일종의 ‘고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지배 미화하려는 '악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경제성장사의 시각에서 한국근대경제사를 완전히 새로 재구성한 최초의 연구서이지, 단순한 ‘재탕’이 아니다. 연구사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평하는 것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울러 호리 교수가 식민지 경제내의 구조적 모순 및 기형적 생산관계, 식민지사회경제의 파탄을 외면했으며 식민지연구에서 식민지성을 배제했다는 지적도 부당하다. 이런 지적은 마치 오렌지에서 왜 사과 맛은 안 나느냐고 시비 거는 것과 같다. 모든 연구는 결국 한 가지 초점에 맞출 수밖에 없으며, 그밖의 다른 측면들은 무시되거나 경시될 수밖에 없다. 호리 교수는 급성장하는 일본 경제와 얽혀 들어간 식민지 한국경제가 대량의 무역거래 및 투자활동에 따라 시장경제화, 기업설립, 도농간 노동력이동 등에서 심대한 변화를 겪었음을 보이려 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한국경제가 자립적이었다거나, 구조적 모순이 없었다거나, ‘내실을 갖춘’, 항구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임을 주장한 바도 없거니와, 굳이 그런 함의를 내비치지도 않았다. 이 점들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인데, 그것을 논하지 않았다고 공박하는 것은 공연한 트집이라 할 수밖에 없다.


식민지연구에서 왜 제국주의비판이 빠져 있는가라는 지적은 그 자체가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러한 지적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롭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연구자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래부터 식민지지배를 미화하려는 ‘악의’를 갖고서 연구를 행하지 않은 이상, 그의 입장에 최종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의 연구 성과 일체를 무시해 버릴 일이 아니다. 속칭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이 불모적인 것이 되어 버린 까닭은 타인의 연구 성과 일체를 무시해버리는 천박한 태도 때문이었다. 한국 공업화의 역사에 대한 열린 시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구자들도 이제 열린 마음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주익종/ 숙명여대 강사, 경제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일제하 평양의 메리야스공업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시대 한국인 공업 발달사, 기업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근래에는 경성방직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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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성 삭제된 식민지연구...기존 성장론 재탕 수준
본격서평 : 『한국 근대의 공업화』(호리 가즈오 지음, 주익종 옮김, 전통과현대 刊, 374쪽)

2003년 12월 12일   김인호 경성대 

김인호/ 경성대·한국사

최근의 식민지근대화론은 근대화의 내발적 요소에 대한 고민을 교묘하게 흡수론적 관점으로 변용해 식민지 이해의 속류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른바 일국사적 관심을 배제하려는 원축론, 조선내 시장 확대를 매개로 한 사회적 분업론, 조선인 구매력 확대론, 맨 파워론, 흡수이론 등 식민지 지배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영역 그리고 '비자율적인 내발요소'의 주연급 상승을 도모하면서 일제에 의해 왜곡된 식민지상을 그래도 꿋꿋했던 조선인의 모습의 연대기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그래도 일본의 지배는 남긴 게 있다'는 오도된 식민지상을 창출하는 데 큰공을 세운다. 호리 가즈오 쿄토대 교수의 '한국근대의 공업화'는 이런 식민지근대화론의 최신 논의를 집약한 저작이다.


저자는 분단 아래서도 높은 경제발전을 보인 남한자본주의의 역사적 조건에 대한 몇 가지 의미 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는 기왕의 군수공업화론, 생산력확충동인론을 전면 비판하면서 조선내 자생적 소비시장 확대와 사회적 분업 확산을 매개로 공업화의 조건이 확충돼간다는 이른바 분업론적 관점(역내 분업, 사회적 분업)을 공업화 연구에 투영했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제국=지배와 억압, 자기완결', '식민지=수탈, 종속과 파행'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비판했다.


또한 일제 지배정책사 중심의 역사인식이나 일국사적 자본주의 발전론이 갖는 문제를 지적하고, 조선의 독자적인 본원적 축적 형태를 상정함으로써 국적자본주의도 아닌 이식자본주의도 아닌 '동북아자본주의의 원형'을 그리고자 했다. 저자의 관심은 이것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사적 이해의 투영과 비서구형 자본주의 발전사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특별히 동북아 지역 자본주의의 독자적 개성과 그 비교연구를 축적함으로써 이 지역 자본주의 형성에서의 구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저자의 고민이 어떻게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각인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경제사적 이해만으로 본다면 높은 성취다.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단순한 한국의 준선진자본주의화 라는 문구 옆의 느낌표를 찍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고도화 속에서 배태된 우리 사회의 왜곡과 역사적 굴절에 대한 물음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특별히 일제하 조선의 자본주의화라는 미사여구에서 감춰지는 식민지성 문제는 일부 근대화론자들이 아무리 일국사적 틀을 버리고 정책사 중심 연구를 해체하면서 지역사라는 또 다른 설명을 가한다고 해도 사라질 수 없는 그 자체로 세계사이고 보편사의 일부다. 그렇기에 식민지연구는 식민지성의 이해를 기반으로 할 때 보다 보편적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식민지성에 대한 인식은 황홀한 경제성장의 현재형에 압도돼 속류화된 채 기왕의 근대화론자의 출발점에서 함께 하고 있다. 서문에서 식민지를 경험했음에도 왜 구미지역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 지역에서 특히 한국만이 자본주의화에 성공해 오늘날 준선진국 진영에 다다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경이감을 드러내고 있다. 쉽게 말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시아의 네 마리 룡' 가운데 하나에 대한 역사적 조건을 알고 싶었던 것이고, 종래의 일국사 차원이 아닌 동북아 지역사 차원에서 자본주의 형성사를 보고자 했다. 나아가 한국사회가 왜 식민지시대에 본원적 축적의 진행을 수반해 불가역적으로 자본주의가 강하게 규정하는 사회가 됐는지 실증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저작 곳곳에서 그러한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열이 돋보였다. 무역과 생산과의 역학관계에서 기왕의 상품시장화론에 반대하면서 조선내 시장의 확대와 사회적 분업의 확산으로 오히려 역으로 일본과의 무역이 강화되고 무역량이 증가했다고 파악한 점은 새롭다. 그러면서 이러한 공업화의 내적 요소는 일본본토공장의 침투나 혹은 무역관계를 통하여 다양하게 조성된다는 입장이다.


일단 이러한 저자의 논의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할 문제를 보자. 우선 저자는 동북아 지역내 분업 확충과 조선내의 사회적 분업의 확대를 중요한 자본주의화의 단서로 포착하고, 시장적 요소를 원축의 중요한 토대로 파악했다. 이는 종래의 비지론이나 이식자본주의론 등의 이중구조론에 대한 비판적 탐구의 결과였다. 아울러 당시 공업화는 생산재와 중간재 그리고 소비재의 흐름에서 포착할 수 있는 조선내 사회분업의 확산과 관련이 있으며 식민지 구매력의 확대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의 논의는 (1)식민지 경제의 파행을 역내분업이라는 틀 속에서  (2)식민지 사회의 파탄을 동북아 지역사라는 범주에서 (3)조선내 기형적 생산관계의 창출을 이른바 사회적 분업의 확산이라는 논리를 통해 희석시키고 있다. 이는 식민지경제의 전반적 왜곡과 파행을 동북아경제 발전의 효율적 토대로 바꿔서 설명하려는 의도이자, 일본과의 연관에 의해서 조선경제가 존립할 수밖에 없는 실상을 조일공생론으로 치환하려는 것이다.


공업화 과정에서 그러한 조선의 요구('개성')가 존재하고 일본과 공존하려는 지지 세력이 시장을 매개로 존재한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오늘날 가격차나 기술수준 등의 비교우위에 기초한 역내분업론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대단히 부차적이고 비자율적인 내발요소다. 국민경제의 기반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 기본적인 수급법칙마저도 본토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던 역사적 조건에서 특별히 경제라고 해서 별다른 독자개성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저자의 분업론은 또 다른 식민지 종속성의 표현일 뿐이다.


두 번째, 저자의 기왕 연구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두드러지는 탈이중구조론 문제다. 그런데 이중구조론적 인식이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적 토양과 한반도 지역의 '개성' 있는 자본주의화 가능성이라는 원래의 의지와 어떠한 상호관련이 있는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역내분업의 확충에서 빚어진 조선경제의 파탄은 수량적으로만 환산할 문제도 아닐 것이다. 기왕의 논의에서도 보편사적인 영역에서 이탈한 특수한 식민지의 특성만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식민지성이 보편적 역사발전 법칙의 일부이기에 그런 것이다. 이는 저자가 동북아 단위의 자본주의 구성과 진화를 언급하려는 근본적인 취지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는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가져온 역사적 조건에는 일정한 관심이 있지만, 왜 하필 식민지이며, 침략이었는지, 왜 자생적인 동북아 자본주의를 비서구 지역에서 일본이 주도했는지 탐구가 없다. 결국 동북아의 경제적 성공이 지역사적 토양에서 발아했다는 이해 이외 역내분업관계의 왜곡이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결여되고, 오히려 분업에서 파생된 자본주의적 긍정적 요소에 대해 斷章取義해 우상화하고 있다. 자칫 일제의 대동북아 경영이 적어도 효율성은 있었다는 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자본주의화와 동북아 경제연관 문제에 지극히 관심을 보이다보니 자연히 기왕의 근대화론에서 보이는 성장론을 재탕하거나 양적, 외형적 근대화의 모습에 대한 기대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업화가 철저히 일본본토 의존으로 진행되면서 그때 형성된 일부의 공업시설도 해방 후에는 무용지물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대규모 공장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인이 운영하거나 조선인의 자체적인 경영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은 무척 적었다. 뿐만 아니라 기업운영에 절대 필요한 자금을 대는 은행도 모두 총독부가 지정하는 곳으로만 지원하게 돼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조선인 자본은 일본인 기업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즉 당시 조선공업은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내실있는 발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것은 저자가 조선에서 내적 분업구조 혹은 순환구조가 존재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해결될 소지가 아니었다.


저자의 말대로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간의 지배 수탈 일변도의 획일적인 역사인식은 많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리고 동북아 지역의 이후 역사가 한반도-중국-일본 등 세 지역의 연대에 의해 더욱 차원 높게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대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국사적 관심과 이론을 해체하고 동북아 차원의 논의로 진행하는 것을 통해 단순한 자본주의화와 준선진국화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에 그칠 경우 그러한 인식은 올바로 현재라는 역사 속에 뿌리내릴 수 없고, 식민지에 이어 또 한번 한반도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식민지성이 거세된 식민지 연구는 마치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환자를 형색만 보고 정상이라 판정하는 것과 같다.


필자는 고려대에서 '일제의 조선공업정책과 조선인자본의 동향(1936-194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대 경제사를 전공하면서 경제사상과 문화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식민지조선경제의 종말' 등을 저술했으며, 주요 논문으로 '일제말 조선총독부의 중소공업육성정책과 그 성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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