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번역한 교토대 호리 가즈오 교수의 저작, '한국 근대의 공업화'(전통과현대 刊)에 대한 경성대 김인호 교수의 교수신문 서평(2003년 12월 15일자)을 접하고, 필자는 서평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 한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의 연구성과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김 교수의 서평이 연구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주관적이며 부당한 폄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학술연구자도 궁극적으로는 입신양명을 목표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술연구란 그 이전의 선배들이 쌓아올린 지혜의 건축물에 새로운 벽돌 한 장을 더하겠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여러 해 동안 연구자가 열의와 정성을 갖고서 수백, 수천 조각의 이론과 사실의 편린들을 모으고 짜 맞추는 노력을 통해서만 하나의 제대로 된 연구서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진지한 학술연구에는 동학들이 배워야 할 것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저작물을 소개하는 서평이란 그 책의 연구사적 가치(그 벽돌이 건축물의 어디쯤 있으며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고, 또한 향후의 계승 혹은 극복의 과제(새 벽돌을 어디쯤, 어떻게 얹을 것인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호리 가즈오 교수의 저작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그가 근대 한국의 공업화라는 큰 주제에 관해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의 10여년간 기울인 땀과 정성의 결정체다. 식민지기의 공업화에 관한 종래의 연구가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겠다는 목표 한 가지에만 몰두하여 심층적인 분석 및 함의의 도출에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반면(단적으로, 번듯한 연구서 한 권 없다), 이 책은 20세기의 세계사에서 두드러졌던 동아시아 역사의 역동성에 주목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단순히 한국을 수탈하고 파탄시킨 것은 아니잖은가 라는 문제의식에서 치열한 실증작업을 통해 탄탄한 성과물을 내놓았다.
"치밀한 실증분석 작업을 매도해서야..."
그의 주장의 요점은 일제하 한국이 급성장하는 일본 경제권 안에서 그 영향을 받아 상품화 및 시장경제화, 근대 기술 및 지식, 제도의 도입을 경험하면서 사회 근저에서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장이 진행되었으며, 현대 한국의 공업화 및 경제발전도 그 큰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만 본다면, 어느 연구자의 표현대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이러한 주장이 일찍이 전례 없는 방대한 자료조사 작업과 치밀한 실증분석 및 탄탄한 논리 종합 작업을 거친 것임을 확인한 후에는 일단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의 연구에 대한 국내 학계, 특히 한국사 학계의 평가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딱지 붙이기 식의 매도 일변도이다. 많은 한국사 연구자들이 어찌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할 수 있는가라는 원초적 물음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이런 연구를 읽어볼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본다. 이런 태도에서는 본격적인 검토 작업도, 그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필요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자기파괴적이다.
이번 교수신문의 서평은 전형적으로 그러한 경우이다. 교수신문사는 호리 교수의 금번 저서가 ‘최근 경제사분야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국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강력한 해외 원군’이라 소개했으며, 김 교수는 본문에서 이 책이 ‘식민지근대화론의 최신 논의를 집약한 저작’으로서, ‘기왕의 근대화론에서 보이는 성장론을 재탕’한 것이며 ‘식민지성이 거세된 식민지연구’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우선, 기본적인 정보 전달부터 제대로 하자. 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최신 논의’를 집약한 것이 아니라, 그 원조에 해당한다. 이 책은 20년 전에 시작되어 10년쯤 전에 완성되어 출간된 저서이다.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참신성이 없는 저작을 본인이 굳이 번역한 것은, 이 책이 이제는 역사 전공의 학부생, 전문적 연구자들, 그리고 한국경제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일종의 ‘고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지배 미화하려는 '악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경제성장사의 시각에서 한국근대경제사를 완전히 새로 재구성한 최초의 연구서이지, 단순한 ‘재탕’이 아니다. 연구사의 흐름을 제대로 짚고 평하는 것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울러 호리 교수가 식민지 경제내의 구조적 모순 및 기형적 생산관계, 식민지사회경제의 파탄을 외면했으며 식민지연구에서 식민지성을 배제했다는 지적도 부당하다. 이런 지적은 마치 오렌지에서 왜 사과 맛은 안 나느냐고 시비 거는 것과 같다. 모든 연구는 결국 한 가지 초점에 맞출 수밖에 없으며, 그밖의 다른 측면들은 무시되거나 경시될 수밖에 없다. 호리 교수는 급성장하는 일본 경제와 얽혀 들어간 식민지 한국경제가 대량의 무역거래 및 투자활동에 따라 시장경제화, 기업설립, 도농간 노동력이동 등에서 심대한 변화를 겪었음을 보이려 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한국경제가 자립적이었다거나, 구조적 모순이 없었다거나, ‘내실을 갖춘’, 항구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임을 주장한 바도 없거니와, 굳이 그런 함의를 내비치지도 않았다. 이 점들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인데, 그것을 논하지 않았다고 공박하는 것은 공연한 트집이라 할 수밖에 없다.
식민지연구에서 왜 제국주의비판이 빠져 있는가라는 지적은 그 자체가 정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러한 지적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롭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연구자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래부터 식민지지배를 미화하려는 ‘악의’를 갖고서 연구를 행하지 않은 이상, 그의 입장에 최종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의 연구 성과 일체를 무시해 버릴 일이 아니다. 속칭 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이 불모적인 것이 되어 버린 까닭은 타인의 연구 성과 일체를 무시해버리는 천박한 태도 때문이었다. 한국 공업화의 역사에 대한 열린 시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구자들도 이제 열린 마음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주익종/ 숙명여대 강사, 경제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일제하 평양의 메리야스공업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시대 한국인 공업 발달사, 기업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근래에는 경성방직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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