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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ㅣ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6
장 자크 루소 원작, 문경자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평점 :
바쁜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눈과 마음이 가는 테마와 신간 위주로 책을 읽다보니 정작 고전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답니다. 장자크 루소의 이름과 대략적인 프로필도 어슴푸레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의 대표 저서인 <에밀>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아들을 낳은 뒤 누군가를 전적으로 키운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되고, 교육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에밀>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생각정거장의 신간소식!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시리즈에서 <에밀>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잽싸게 읽기 시작했어요.
사실 요며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물론 이런 저런 일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기도 했고, 새벽에 깬 아들을 다시 재우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렇게 피곤한 와중에도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요즘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여중생 사건 때문이었답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그 어린 아이들을 그토록 잔인한 악마로 만들었는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부모에게 일차적인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교육과 우리 사회, 그리고 공동체가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은 것에도 화가 났습니다. 잘못된 교육과 방관 속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더 괴물로 변해가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건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에밀>을 읽고 무려 몇 백 년 전에 루소가 가졌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어떻게 루소는 발달심리와 아동교육이 전무하던 18세기에, 그것도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에밀>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오버랩되면서 그로부터 몇 백 년이 흘렀건만,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집니다.
어린아이다운 어린시절에 대해 루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기로 태어난다는 것은 누구나 각자 자신의 타고난 재능, 취향, 욕구, 소질, 열정, 그리고 거기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에 따라 많든 적든 발전해나갈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1 페이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가장 큰 교육의 장벽은 바로 이 부분이에요. "각자 자신이 태어난 대로", "타고난 대로" 자랄 수 있는 권리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존재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나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나은 편이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 아이는 단체생활과 규범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것들을 강요받고, 옳고 그른 것을 주입받게 되니까요. 굳이 공부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편식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고, 쉬는 시간엔 조용히 독서를 하는 것이 칭찬받는 일이 되죠. 사실 매운 음식을 싫어하거나 독서보다 나가서 뛰어노는 게 좋은 건 존중받아야 할 취향인데, 지나치게 편협적인 규범이 정해놓은 범주 안에 드는 아이는 착한 아이, 그렇지 않은 아이는 요주의인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아이가 어느 정도의 판단력을 가질 때까지 화려한 상류사회나 부유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는 것이었는데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은 부러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불행한 사람의 모습은 동정과 연민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루소는 설명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동류인 인간들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은 그들의 즐거움보다는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에게 공통된 욕구는 우리를 이해관계로 결합시키지만, 인간에게 공통된 비참함은 우리를 애정으로 결합시킨다.”
아이가 바람직한 감성을 가져서 선행과 친절을 베푸길 원한다면, 먼저 동정심을 통해 인류에 대한 애착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행복한 모습과 사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질투와 허영심을 키울 뿐이라고 루소는 경고합니다. 어쩌면 지금 부모들의 모습과 정반대가 아닐까 싶었어요. 공부하라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누리고 살고 있는지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죠. 많은 위인전도 위인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성공한 삶은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명예를 얻는 삶이라는 공식이 너무 어렸을 때 머릿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예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하나만 낳아 키우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나와 내 아이, 내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개인이 어떤 해결책을 찾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죠.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이기주의가 팽만한 사회에서 이기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과 싸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뚜렷한 인식과 가이드라인이 없이 그저 "이기적이 되면 안돼!"라는 공허한 외침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루소가 말하는 참교육의 정의는 의미심장합니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아이들 교육과 그 자신의 삶 사이에 너무나 큰 간극이 있기에 그의 훌륭한 이론마저 외면당하곤 했지만, 여러모로 답보 상태인 오늘, 그의 통찰력으로 다시 한 번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시리즈는 방대한 분량의 고전을 200쪽 정도로 추려낸 축소판입니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난 뒤, <에밀> 완역본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800쪽이 넘는 분량에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지만, 책을 읽고 나니 분명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