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철학 공부 How to Study 1
다케다 세이지 & 현상학연구회 지음, 정미애 옮김 / 컬처그라퍼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작곡과 음악이론을 전공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철학 공부였습니다. 하지만 연주학과에 재학할 때는 잘 몰라도 문제가 없었는데 석사 논문을 쓰면서는 나름 철학에 대해 아는 척이라도 해야 했고, 석사를 졸업한 뒤 박사 학위에 들어서면서 이제 철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유의 방식을 토대로 스스로의 연구를 구체화해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런 기초 없이 철학을 – 그것도 대학원에서 – 시작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답니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뭔가 “넘사벽”이 느껴져 지치기 일쑤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고요.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도 방대한 물량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구마처럼 캐면 캘 수록 더욱 많이 나오니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잘 몰라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좀 쉬운 말로(!) 정돈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간절했던 찰나, 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 <처음 시작하는 철학 공부>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철학자이자 문예평론가인 다케다 세이지와 현상학연구회가 쓴 How to Study 시리즈의 첫 권. 감히(?) 철학을 쉽게 설명하겠다는 야무진 이 책을 소개해보자 합니다.


2014-10-28


오사카 출신의 제일한국인 2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총 서른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철학자는 각각 세 개의 스텝을 통해 소개되는데 1) 철학사적 위치와 생애, 2) 핵심 사상 그리고 3) 활용하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스텝에서는 연표에 따른 주요 활동과 영향을 받은 사람, 영향을 준 사람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고 두번째 스텝에서는 그 철학자를 대표할만한 업적이나 사상이 짧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스텝이 끝날 때마다 약 한 페이지 정도 해당 철학자의 철학 사상을 그래픽으로 나타내고 있어 다시 한번 시각적으로 복습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활용하기에서는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개인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사상만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면 그것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가장 마지막으로는 사상과 저자의 설명을 종합하여 세 개의 중요 포인트를 짚어주어 정리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 스텝이라고 해봤자 한 철학자당 할당된 페이지가 (그래픽과 초상화를 포함하여) 8페이지 정도기 때문에 굉장히 짧고 간결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한 사람의 철학자를 소개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적은 양이죠. 책도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얇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목에 충실한 구성입니다. 말 그대로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철학사의 큰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어느정도 머릿속에 철학사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돕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한 각 철학자를 소개할 때도 최대한 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중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다른 책이나 출처를 통해) 심화학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될 것입니다.
255페이지의 적은 분량으로 30명의 “철학의 거장”들을 소개하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각 철학자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또다시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세하지는 않더라도 먼저 큰 그림을 그림으로써 각 철학자를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요 작품도 함께 수록해주었으면 찾아보기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만큼 그 노력은 스스로가 해야 할 몫인 것 같습니다.


박사 학위만 무려 세 개를 가지고 계셨던 예전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읽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쓴 사람이 바보다!” 물론, 교수님만큼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이나 자신있게 하실 수 있는 말씀인 것은 맞지만 그만큼 지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처음 시작하는 철학 공부>는 철학 입문자들에게 정말 반갑고도 고마운 책이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으니까요. 일부러 어려운 언어로 이리저리 꼬아 “그들만의 지식”을 전하는 일부 다른 책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어떤 철학적 사고를 잘 파헤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분명한 원리로 보여주려는 노력은 적어도 철학을 “난해해서 고맙사옵니다.” 하고 받을어 모시는 태도보다 훨씬 어렵고 또 유익하리라. (…) 더 중요한 점은 “아하, 이런 원리가 쓰여 있구나!”라고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면, 그것은 더 폭넓고 더 깊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앎’이 되기 때문이다. (머릿말 중, 12페이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철학 공부와 수많은 사상들, 생각들 그리고 사유의 제목들. 그것이 큰 짐처럼만 느껴졌던 저에게는 참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이 그저 쓸모없는 탁상공론이나 말장난처럼 느껴졌던 분들에게도 이 책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이상 철학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사유하고 새로운 길을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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