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처럼 질문하라 - 합리적인 답을 이끌어내는 통섭의 인문학
크리스토퍼 디카를로 지음, 김정희 옮김 / 지식너머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받아든 순간 특별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손에 넣었어"라는 생각과 함께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첫 장을 넘기게 되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이러한 책에 대한 첫인상은 때때로는 책을 덮은 후에 "에, 뭔가 너무 많이 기대했나봐" 하며 실망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흥미롭게 읽으면서 다 읽자마자 "다시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상당히 드문 - 그러나 그만큼 대단하고 경이롭기까지 한 경우인데,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독서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엄청난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 자꾸 새로운 책을 찾게 되는 것이죠.

오늘 소개할 "철학자처럼 질문하라"가 그랬습니다. 겉표지와 책 소개를 읽는 순간 "대단한 책이다!"라는 촉(?)이 오더군요. 마침 한참 이사를 준비하고 여러가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바쁜 기간이었지만 "이 책만큼은 꼭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책을 받아보았을 때의 만족감은 더욱 컸습니다. 단지 첫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도 벌써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책이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책을 받아 읽기 시작하면서 책의 겉표지에 있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논쟁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라는 문구가 이 책과 과연 잘 어울리는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치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는 이유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인 듯한 뉘앙스이기에 아쉽더군요. 이 문구가 과연 원서의 문구인지 아니면 번역하는 과정에서 책의 홍보를 위해 추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라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불만은 불만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 "웃는 남자"의 한국어 번역본 홍보문구가 "다크 나이트 조커의 탄생!" 이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이후로는 책을 선전하는 한 두 줄의 문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뉴스의 낚시성 제목처럼 잠시나마 독자를 현혹하려는 상술에 민감해지더라고요. 괜한 참견이고 쓸데없는 지적일 수도 있겠지만, 책 자체의 진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조심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로 홍보하는 것이 출판사의 책임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쩌면 한 권의 성실하고 진중한 책이 "다 거기서 거기인" 자기계발서처럼 포장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조리있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보고는 "참 말을 잘한다"라고 합니다. 희안하게도 이 말은 칭찬같으면서도 칭찬이 아닌 경우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을 "똑부러진다"고 말하면서도 "인간미없다" 혹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다" 며 흉보기도 합니다. 사실상 실속은 없으면서 말만 잘해서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말을 잘하기까지 어떤 노력과 연습을 거듭해야 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도 말만 잘하면 충분히 저렇게 할 수 있을텐데 단지 말을 못할 뿐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런 "착각"을 꼬집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맨 먼저 할 일이 나 자신을 점검하고 내가 아는 지식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22 페이지)

말을 잘 한다는 것, 즉 다른 사람에게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인식, 이해시키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요행이나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나의 주장을 살피고 검증한 뒤에 다른 사람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와 상황의 특성을 고려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다듬으려면 오랜 시간의 지혜와 연륜 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역사적인 달변가들은 대단한 노력가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은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도 한 몫했겠지만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작정 이야기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있으며, 460여 페이지동안 비판적 사고 능력,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빅파이브 질문"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깊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다섯 가지의 근본적인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질문들이 조금씩 비판적 사고의 체계를 배워가면서 난해해지고 모호해집니다. 무언가 확실한 논증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알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될 것입니다.

책의 내용이 더욱 특별한 것은 저자가 철학적인 입장에서만 논리와 사고를 분석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관점은 물론 역사적 배경과 뇌과학적 측면,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는 그야말로 복잡미묘하며 수많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형성되는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는 간섭과 영향들을 생각하면 그것들의 존재를 감안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의 중심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이전에 내가 어떻게 나 자신과의 논증을 성립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떠한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의 사고를 제대로 파악하고 알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저자는 소개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옳은 주장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가도 그것을 제대로 증명해보이기 위해서 분해하고 분석하다보면 오묘하지만 결정적인 헛점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삶이 고달파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독단에 빠져 그것을 핑계삼아 생각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언가 알아가는 것에 즐거워하고 가득한 호기심으로 탐구하기보다는 "이렇게 믿고 싶고", "이랬으면 좋겠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스스로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 깊이 생각하고 고찰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려면 머리만 아파오고 때로는 많이 알면 더 골치아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논리적 사고를 거부하고 더이상 재차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에 게을러진다면 결국 자기자신도 모르는 사이 "독선가"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저 자신의 편협적인 사고 안에서 이해되는 것만 이해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유쾌하고도 시니컬한 유머에 매료되었답니다. 그렇게 즐거운 "논증"의 세계로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깊게 생각하는 것이 골치 아픈 것이 아니라, 오래된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유쾌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철학 혹은 논리에 대해서 어렵게만 생각해왔다면 즐겁고 효과적으로 입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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