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poleon Bonaparte>



1 生涯

1.7  滅亡으로

  




 * 러시아 전쟁 <계속...>

 



 
  3. 모스크바 制壓

 그리하여 9월 14일 '나폴레옹 군'은 ‘표도르 바실레비치 로스토프친’ 市長에 의해서
 모든
'라이프라인(Life Line)'이 제거(멈춘)당한 뒤였던 텅 빈 '모스크바' 시가를 행진했다.

 ※ lifeline은 전기, 가스, 수도 등 생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네트워크 시스템.

 <그
때의 시점으로 대육군의 병력은 11만이었으며, 나폴레옹은 그 다음날인 15일 아침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적의 수도를(당시 러시아의 실제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루크) 공략함으로 해서
 '아렉산드르1세가' 항복을 수락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사령관은 항복하지 않았다. 거기다 또 '모스크바'에는 대화재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또
그것은 9월 14일부터 18일(러시아의 음력에서는 9월 2일~6일)까지 최고조에 달했었다.

 그래서 그때 '모스크바'의 중요한 건물들은 거의가 다 목조(木造)였기 때문에, 그로인해서 시가는 거의가 다 전소했고, 그것이 또 결과적으로는(미리 예상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프랑스군들의 주둔을 효과적으로 막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화재는 '러시아군'의 '방해 작전' 一名 '초토(焦土)작전'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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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oleon-Moscow Fire"



 아무튼, 그래서였던지 나중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모르티에 장군'에게 '크렘린'과 함께 공공건물들의 폭파를 명했다. 그러나 다행으로 그때 또 큰 비가 내렸고, 그리고 이어서 도착했던 '러시아군'들에 의한 방어로 인해서 3개의 탑과 성벽 한 변, 그리고 병기고의 일부만이 파괴되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
나폴레옹'은 후에 그에 대해서 또 다음과 같이 말을 했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2주간만 더 빨리 출발했었더라면, 타르티노에서 쿠트조프군을 격파했을 것이다>라고...

 
어쨌든 '나폴레옹'의 말대로 그렇게만 되었었더라면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아무 소득도 없이 나와야만 했던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 후에 '프랑스군'에 대항할만한 군대가 재집결할 수 있었던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또 그때 '프랑스군'은 '모스크바' 침공으로부터 퇴각까지의 단 1개월 동안에 병력이 현저히 감소했고, 그로써 그때, 즉시 가용할 수 있었던 병력은 겨우 10만 정도에 불과했다.




"KREML 크렘린"



 <퇴각(退却)>


 
어쨌든 다시 10월 19일, 세 번에 걸쳤던 화의(和議)도 결국에는 무위로 돌아갔고 '나폴레옹'은 계속되던 '러시아'의 불복을 바라보면서 이미 잿더미로 변해버렸던 '모스크바' 시가에 진지을 마련했지만, 그러나 그때부터 더 한층 심해졌던 '러시아군'의 방해공작으로 인해서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퇴각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하여 10월 24일 '프랑스군'은 한때 '말로야로슬라베츠 전투'에서 잠시 신승(辛勝)을 거두기도 했으나, 하지만
그때 이미 '러시아군'은 '프랑스군'보다 더 빨리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먼저 '프랑스군'의 귀도경로가 될 '스몰렌스크'를 '모스크바'처럼 초토화시켜버렸다. 그리고 또 '쿠투조프'는 '프랑스군'이 그 '스몰렌스크' 쪽으로 퇴각하도록 유도했고, 그 작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또 그 '스몰렌스크' 街道는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를 침략했을 때 사용했던 길로, 이미 양군(兩軍)의 전투로 인해서 초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 '프랑스군'으로서는 식량조달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 또 '쿠투조프'는 그런 '프랑스군'을
남쪽의 좁은 길을 통해서 밀집대형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유도를 해나갔으며, 이어서 빨치산(유격대)부대를 준비시켜서, 당시 '프랑스군'의 최대 약점이었던 치중대(輜重隊-수송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작전을 구사해나갔다.

 
그리고 또 그 사이 '코사크 기마병'(앞에서 설명되었음)을 포함한 '러시아'의 '輕기병대'는 '프랑스부대'를 계속해서 습격했고, 그리고는 또 막고, 고립시키는 작전을 병행해서 해나갔다.



 * 輕騎兵

 
방패와 갑옷(鎧) 등, 重裝甲으로 무장하고 적의 주력을 괴멸시킬 목적이었던 중기병과는 달리
 최소한의 장비로 속도전의 이점을 살린, 후방교란을 주목적으로 했던 兵種이었다.
 
역사적으로는 내륙의 유라시아의 유목민의 전술에 기원을 둔다.
 
그 지역의 牧民戰士들은 유목생활 중에서 몸에 익힌 탁월한 馬術과 활 기술에 의한 弓騎兵으로 활약했고, 근대적인 대포를 기반으로 하는 전술이 보급될 때까지, 유라시아대륙에서부터 북부아프리카 지역에까지 가장 유력했던 군사세력의 하나였다.





<그림 설명>

16~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공화국의 <후사리아>기병. 그림은 이동시의 경장.
전장에서의 돌격공격 시에는 투구와 갑옷을 추가해서
스스로의 등에 거대한 날개장식처럼 붙이고 다녔고
말에도 투구와 갑옷을 입혔으며, 거기다 또 수 미터나 되는 長槍을 휴대했다.



 

 그러자 병참(兵站-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관리, 보급, 지원하는 일. 또는 그런 兵科)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던 '프랑스군'은 점점 더 그 꼴이 말이 아니게 되어갔고, 게다가 이동수단이었던 말의 생명유지조차도 어려워졌기 때문에, 그 틈을 노린 아사직전의 병사들은 그 말들을 식료로써 도륙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또 이제는 말(馬) 없는 기병도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그 기병들조차도 나중에는 도보진군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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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각하는 프랑스군>

 
 그래서 그때 '프랑스군'에서는 기아와 질병, 거기다 혹독한 엄한(嚴寒)으로 사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탈주병까지 급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 그 대부분의 탈주병들은 포로가 되든지, 아니면 '러시아 농민'들에 의해서 즉석에서 처형되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1812년 11월 초가 되자 '프랑스군'은 굶주림과 동상(凍傷) 그리고 행군으로 인한 피로누적 등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그리고 말(馬)들마저도 죽어나갔기 때문에, 그래서 그 <러시아'에서의 겨울>은 그들에게서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악몽이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 또 '비아즈마'와 '보로츠크'에서도 '러시아군'이 '프랑스군' 부대를 습격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그때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하여 11월 3일에는 프랑스군의 병력이 5만으로 감소했고, 11월 8일 스몰렌스크에 도착했을 때는 3만5천정도로 줄어있었다.

 아무튼 또 
11월 6일 '나폴레옹'은 '말레 장군'이 10월 23일 '프랑스'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리고 또 11월 28일 '드네프르 강'의 지류인 '베레지나 강'에 폰툰(pontoon) 다리(橋)가 가설(假設) 되었고


 ※ pontoon= 1. <군사> 상륙, 도하(渡河) 등에
사용하는 군용의 철주(鐵舟).
                   2. <해양> 밑이 평평한 작은 배. 목제, 강철제, 철근, 콘크리트제 등이 있으며
                      기중기, 준설 펄프의 대선(臺船), 부잔교(浮棧橋) 등으로 이용한다.



<사진은 독일군이 가설 중인 폰툰 교>


 그러자 '구투조프'는 그것이 재 반격의 호기라고 생각하고는 '베레지나 강'을 건너던 '프랑스군'을 급습했다.
 그러자 또 그 결과 '프랑스군'은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또, 그 참혹했던 전투는 <베레지나 도하작전>이라고 불렸으며
 그리고 또한, 그 후 '프랑스군'의 병력은 3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12월 5일 '나폴레옹'은 '뮤라 원수'에게 뒷일을 부탁하고는 썰매를 타고 급거 귀국했다.
 그리고 또
그 후에 '뮤라'도 '나폴리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우제누 드 보아루네’에게 그 부대를 맡기고 탈주했다.

 
그 후 '프랑스군' 대부분의 부대에서 잔존 병이 격감했고, 이어서 1812년 12월 14일에는 그들 모두 '러시아'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그때 살아남았던 병사들은 겨우 22000명 정도였다.
 그러니까 결국 '프랑스군'은 처음 60만이었던 것이, 그때는 5천 정도까지 병력이 줄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전투로 인해서 사상된 사람들의 수는 '러시아'나 '프랑스'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때 전선이 통과하면서 생겼던 황폐해졌던 지역이나, 그 주민의 사상자 수는 그보다 더 훨씬 많았다.

 
그러니까 그때, 전체적으로 대략 수백만 명 정도가 사망했었다고 본다면
 양군의 사망자 수는 약 100만 명 정도였었다고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 결과로 볼 때 '프랑스군'은 30만 명 '폴란드군'은 7만 명 '이탈리아군'은 5만 명 '독일군'은 8만 명 그리고 또 '러시아군'도 그때 아마도 45만 명 정도는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인명(人命)과 함께 '프랑스'는 말 20만 마리와 대포 1000문도 함께 잃었다.



<참고도: 병사들의 수와 기온의 변화-오른쪽 꼭지점이 모스크바. 검은 색이 후퇴경로>


 그리고 또 '러시아어'로 <거지>나 <페텐師>를 의미하는 '샤롬이지니크(러:шаромыжник)'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cher ami(친애하는 친구)'란 말이 그 어원이라고 하고, 그것은 또 그 심상찮았던 겨울추위 속에서 병사들이 '러시아' 원 주민들에게 구걸을 했을 때 썼던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편, 요리점(비스토로-불:bistro-대중식당)이란 말은 그 어원이 '러시아'라고 생각하고 있다.

 4. 역사적인 평가

 
1812년 '러시아전쟁'서의 패배는 '나폴레옹'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나중에 그가 '엘바 섬'으로 유형 가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고, 더불어서 '나폴레옹전쟁'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엘바 섬 위치도-중앙>
 

 그러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그 전쟁이 <조국 전쟁(영:Patriotic Warr, 러: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이 되었던 것과 함께, 이후 19세기 '러시아국민'들의 애국심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강화된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또 그것의 간접적인 영향의 결과로는 ‘데카브리스트’의 난(亂)으로부터 시작해서 1917년의 2월 혁명까지 이어지게 되는 일련의 혁명으로 연결되어서, 근대화에 대한 강한 요구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 데카브리스트(러:Восстание декабристов, Decembrist revolt=dekabrist)의 亂

 1825년 12월 14일(그레고리력 12월 26일)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농노제(農奴制)'의 폐지와 '입헌정치'의 실현을 요구하며 '러시아'의 '청년장교'들이 무장봉기하여 일으켰던 반란이었다.
 봉기는 실패했지만, 그 정신은 '러시아'의 현실에 불만을 품은 다음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데카브리스트의 난>


※ 2월 혁명-차르(tsar)의 전제정치가 계속되던 중
'1917년의 2월'에 혁명으로 인해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된 사건.

  
  하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서 '나폴레옹'이 완전한 재기불능상태까지 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폴레옹'은 다시 '독일'에서의 패권을 다투기 위해서 그보다 한층 더한 大원정을 결행하게 되고, 이어서 2만 5천 명의 동맹군과 함께 총 40만의 '프랑스군'을 또 그곳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1813년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치러졌던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도 '나폴레옹'은 패배하고 말지만,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1814년의 '프랑스 전쟁' 때까지 계속되게 된다.

 
어쨌든, 그 '러시아전쟁'으로 '나폴레옹'이 <천하무적>이 아닌 것이란 것만은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러자 또 그 틈을 노리고 '프로이센 민족주의자'들과 '러시아 지휘관'들의 요청으로 인해서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라인-프로이센 연합>을 결성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것이다.

 
그랬으므로, 만약에 '러시아'에서의 그 패배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결정적인 '독일원정'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원정 - 끝>


 

 





<冬宮의 군사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러시아 영웅들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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