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生涯

 1.7  滅亡으로


 

              

            <1808년5월3일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의 학살-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3rd May 1808 = 고야>
           


 1808년 5월 '나폴레옹'은 '스페인'의 '부르봉朝' 내분에 개입했고
 이어서 '나폴리 왕'으로 앉혀두었던 형 '죠제프'를 이번에는 그 '스페인 왕'의 자리에 앉혔다.

 


 * 부르봉家(Maison de Bourbon)

 유럽의 왕가로 프랑스王家 카페家 지류(支流)의 하나이다.
 현재의 스페인 왕가이며, 현재의 룩셈부르크대공가도 부계에서는 부르봉가의 계보를 이어받았다.
 Bourbon의 어원은 켈트족어로 진흙(Borvo, 혹은 Borbo)이란 의미를 가진다.

 


 ** 카페家(Capetiens)

 

 프랑스의 파리주변, 일-드-프랑스(프: Ile-de-France)에 기원을 둔 왕가이다.

 2명의 西프랭크 왕을 냈던 로베르家의 후신(後身)이다.

 가명(家名)은 시조였던 ‘유()그 카페’에서 유래하지만
 카페(capet) 라는 것은 짧은 외투(케이프)로
 원래는 ‘유그’에 붙었던 별명이었다.
 카페가는 프랑스왕가가 되었던 외에도, 그 분가로부터 많은 유럽제국의 군주 가계가 나왔다.
                                   



 ** 켈트족 語派(Celtic Languages)

 인도, 유럽 어족에 속하는 어파의 하나이다.
 원래는 유럽에 넓게 퍼져있던 켈트족의 언어를 말했던 것이었지만, 로마인과 게르만족에 쫓겨나서 현재는 아일랜드와 영국 또는 프랑스의 일부지역에만 남아있는 소수언어가 되었다. 이탤릭 어파와는 다소 공통점이 있고, 또 어휘에서는 게르만 어파와 일치하기도 한다.


 *** 유()그 카페(Hugues Capet)

 938년부터 940년경-996년 10월 24일
 카페朝 초대 프랑스 왕

                                

 그러나 그로인해서 '스페인'의 반발은 격렬해져서 '반도전쟁'(1808년-1814년)이 일어났고
 봉기했던 민중들의 복병들에 의한 저항으로 '프랑스군'은 고전했다.(‘게릴라’ 라는 말은 이때에 생겼다)
  


 * 半島戰爭(1808년~1814년)

  영:Peninsular War(반도전쟁)
 스:Guerra de la Independencia Espanola(스페인 독립전쟁)
 포:Guerra Peninsular(반도 전쟁)
 불:Guerre d'Espagne(스페인 전쟁)
 카타르냐:Guerra
del Frances(프랑스 전쟁)

                       

                           <1808년 5월 2일 맘르크(노예병)들의 공격-고야작(1814년)>


 나폴레옹전쟁 중에 이베리아반도에서 스페인군, 포르투갈군, 영국군이 모두 프랑스제국군에 맞서서 싸웠던 대 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해머(hammer)와 철침(鐵砧-모루)>의 전쟁으로 비교되고 있다.
 즉, 해머란 웰링턴(Wellington)공이 이끌었던 4만에서 8만의 군세였던 영포(英葡)군이었으며, 거기에 대해 철침은 스페인군과 게릴라와 포르투갈 민병군에 의해 프랑스군이 타격을 받았던 전쟁이었다.


 ** 웰링턴公(初代 Arthur Wellesley, 1st Duke of Wellington, 1769년 4월 30일~1852년 9월 14일)


 영국의 군인, 정치가. 외무대신을 지냈던 ‘리처드 웰즈리’는 형.
 나폴레옹과의 싸움에서 군공을 거듭했고, 최종적으로 워털루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칭은 <철의 공작(Iron Duke)>, 후에 수상이 된다.
 애마(愛馬)는 코펜하겐.(이하, 생략)

                                                                    


 이 전쟁은 당시, 이베리아반도의 성질에 의해서 크게 좌우되었는데, 토지가 크게 부족했던 이베리아반도에서는 대군이 침공을 했어도 그곳의 식료(食料)가 부족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최고조에는 3만이란 병력까지 투입했었지만, 그러나 군을 집결시킬 장소가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소부대에 의한 몇 군데의 지역에서 한정된 기간으로 전투를 치러야만 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전쟁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사회적, 경제적인 구조를 파괴해서 1850년까지 계속되었던 대내전(大內戰)과 함께 반도전쟁으로 훈련되었던 장교들에게 이끌려서 미쳐 날뛰게 되는 해방시대의 전조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그로인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전쟁의 경위>

 
1. 대륙봉쇄령

 
1806년, 나폴레옹1세는 대륙제국에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대륙봉쇄령을 베를린에서 선언했다. 그러나 그때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던 두 나라(스웨덴과 포르투갈)는 나폴레옹의 선언에 따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1807년의 틸지트 조약이 체결된 뒤, 스웨덴은 러시아와 다투게 되었고, 그때는 또 동쪽의 문제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베리아반도의 항구공략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1807년 11월, 대륙 동맹 참가에 대해서 난색을 표했던 섭정(攝政) 죠안 왕자(나중에 죠안6세)의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포르투갈침략의 임무를 받았던) ‘쟌-안드슈 쥬노’ 지휘하의 육군을 스페인으로 보내게 되었다.


 ** 죠안 왕자(나중에 죠안6세-Joao VI)

 1767년 3월 13일~1826년 3월 10일
 포르투갈 왕. 재위:1816년~1826년


                                   


 ** 쟌-안드슈 쥬노(Jean-Andoche Junot, Duc d'Abrantes) 1771년 10월 23일~1813년 7월 29일

 프랑스 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전쟁기의 프랑스 군인.
 나폴레옹 숭배자로,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츠아로부터도 <나의 6번째의 아들>로 사랑받았다.

                                    


 그리고 또 그와 같은 시기에 '스페인'의 수상 ‘고도이’가 '나폴레옹'의 위임을 받아서 ‘듀퐁 장군’을 카디스(Cadiz-스페인 서부 항만도시)방면으로 보냈고, 솔트 장군도 코르나 방면으로 떠났다.


 ** 카디스(Cadiz) 스페인 서부 항만도시

 

                                               


 ** 코르나(그:A Coruna, 스:La Coruna)

 스페인 북서부의 대서양에 접한 항만도시

                       

 그러자 스페인의 2개 사단은 대립하고 있던 포르투갈을 점령하기 위해서 당시 함대탈취를 목표로 하고 있었던 프랑스군과 합류했다. 그리고 이어서 리스본(Lisbon)은 포르투갈 육군이 영국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항만과 해안을 지키는 데만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군사적 저항 없이 12월 1일에 공략되었다.

                      

                                    

                                                        <리스본 위치도>

 

 


 

 <반도전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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