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生涯

 1.6  絶頂期


 * 아우스트리트전투(영:Battle of Austerlitz-불:Bataille d'Austerlitz-독:Schlacht von Austerlitz)
   ※ 앞에서 계속...


                  <우측 백마-나폴레옹, 좌측 백마-아렉산들1세=현실적이지 못한, 일종의 상징도임>


 그래서 그곳에서 '나폴레옹'은 적의 공격을 유인하기 위해서 함정을 쳤다.



<12월 1일 상황도-적색이 연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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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나폴레옹'의 대관식 1주년이 되던 1805년 12월 2일 오전 8시.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 8만 7천 명은 '아우스트리트' 서방의 '프라트 고지'로 진출했고, 그 우세했던 병력으로 '프랑스군'에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때 '프랑스군'은 7만 3천의 병력으로 연합군에 열세였다. 그리고 또, 그 포진(布陣)에 있어서도 '프랑스군'은 나중에 후방과의 연락선(連絡線)을 확보하기 위해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右翼(남쪽)쪽이 특히 허술했다. 그러자 '아렉산드르1세'는 그것을 호기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주력부대를 '프라트 고지'로부터 '프랑스군' 우익방향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그때 '프랑스군'의 우익을 지키고 있던 '다브'의 '제3군단'은 그 많은 군대를 다 상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고,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연합군은 한층 더 많은 부대를, 그것도 '프랑스군' 진지 바로 앞을 횡단해서는 그 우익 쪽으로 쇄도해서 들어갔다.



 ** 다브()(Louis-Nicolas d'Avout 또는 Davout, 1770년 5월 10일~1823년 6월 1일)


 '나폴레옹전쟁' 기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군인, 원수.
 아우어슈테트 공. 에크뮬(뮤르)大公으로도 알려져 있다.
 군사(軍事) 면에서 <不敗의 다브>라고 불렸을 만큼 우수했고
 그 외에 행정과 관리능력에서도 매우 우수했다.






  
                                                           <12월 2일 9시 상황도>

 
 하지만 그것은 바로 '나폴레옹'의 함정이었다. 그러자 '
나폴레옹'은 곧 그 때문에 허물어져버렸던 '연합군'의 중앙부를 향해서 '솔트'의 '제4군단'을 단번에 꽂아 넣었던 것이다.
 그러자 또 그때, 중앙돌파에 성공했던 '솔트 군단'은 '다브 군단'과 협력해서 그때 이미 '프랑스군'의 우익에 쇄도해 있었던 '연합군부대'를 협공했다. 그러자 '연합군'은 얼어있던 호수를 건너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또 그때 '프랑스군'이 대포를 쏘아서 얼음을 깨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엄청난 수의 '연합군'들이 그곳에서 수몰(水沒)했다. 그러자 또 이어서 다른 '연합군부대'들에도 '란누'(앞에서 소개되었음)의 '제5군단'과 '뮤라'(앞에서 소개되었음)의 기병군단이 돌파해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저녁때까지 '연합군'은 약 3만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는 뿔뿔이 흩어져서 패주하고야 말았다.


 
 ** 솔트(Nicolas-Jean de Dieu Soult, 1769년 3월 29일~1851년 11월 26일)(후술)

 나폴레옹전쟁 기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군인, 원수.
 
史上 6명밖에 없었던 <프랑스 大元帥> 중의 한명.
 후에 정치가가 되었다.




 

 그러자 그때, 중앙부를 지키고 있던 ‘쿠투조프’는 급히 '러시아 근위군단'을 투입했다. 그리고는 '프랑스군'과 격전을 펼쳤지만, 그러나 '베르나돗트' '제1군단'의 원호와 '나폴레옹 친위대'의 투입으로 인해서 '프라트 고지'의 연합군은 곧 허물어졌다.


 
 ** 카를(칼)14세 요한(스웨덴어:Karl XIV Johan, 1763년 1월 26일~1844년 3월 8일)

 스웨덴 왕. 노르웨이 왕(노르웨이 왕으로서는 컬3세). 베르나도트 朝 초대국왕(재위:1818년~1844년).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전쟁 기의 프랑스의 군인.
 
쟌-바티스트 줄 베르나돗트(프:Jean-Baptiste Jules Bernadotte)로서도 알려져 있다. 덧붙여서, 베르나도트 朝는 '나폴레옹'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왕조 중에서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왕가이다.





 
  ** 老親衛隊(La Vieille Garde, 영:The Old Guard)

 프랑스제1제정시대의 프랑스육군의 近衛제3보병사단의 통칭.
 
황제친위대(Garde imperiale) 중 古參, 베테랑 兵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부대였으며
 다른 부대와는 한 선을 긋는 전투능력과 '나폴레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알려졌다.
 항상 황제 나폴레옹과 함께 했었고, 영고성쇠를 같이 했던 부대로 유명했다.
 별명으로 ‘고참 근위병’이라고도 불려졌다.
 그 친위대는 '나폴레옹'을 '家長'으로해서 군대가족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에 '나폴레옹'은 그들을 敬愛했으며, 그들의 충성심 또한 범상치 않았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나폴레옹'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써, 전장에서는 '決戰병력'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또 그들은 <검은 곰털모(熊毛帽)의 무리(부대)> 또는 <무적의 노친위대>란 이름으로
 적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프랑스군'에게서는 승리를 약속하는 존재로서 그 이름을 날렸다.


 
 ***  퐁텐블로궁전(불:Palais de Fontainebleau)

 세계문화유산. 1981년에 등록.
 세이누-에-마르누(Seine-et-Marne)縣에 있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궁전.
 
퐁텐블로우 城(Chateau de Fontainebleau)이라고도 불리어진다.
 궁전의 현재모습은 많은 프랑스 왕들에 의한 축성의 결실이며
 기본적인 건축구조는 '프랑수와1세'에 의한 것이었다.
 
건물은 안뜰을 둘러싸도록 되어있고, 퐁텐블로우 거리 또한
 한 때 왕의 수렵장(퐁텐블로우의 숲)이었던 곳을 둘러싸듯이 발전하고 있다.






 그들은 또 '나폴레옹'과는 매우 강한 정신적인 동반자로서 결속되어있었기 때문에
 1814년 제1회째의 退位 때는 ‘퐁텐블로궁전(Fontainebleau-파리 동남쪽, 궁전과 숲으로 유명. 역대 왕들의 거주지)’ 앞 광장에서 이별을 고하면서 '나폴레옹'은 그 사단장이었던 ‘푸티’ 장군을 포옹 한 후
 군기에 입맞춤을 하고는 쓰러져서 울었다고 한다.



  
                                                        <퐁텐블로의 결별>


 그리고 또 '워털루의 싸움'에서는 '네이 원수'가 반복해서 친위대의 투입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것을 주저해서 승리를 놓치게 된 한 요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최종국면에 투입되어서 '영국군' '메이트랜드 旅團' 등과 교전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그에는 이설도 많다.

 
아무튼, 그 전쟁에서 그들은 패배가 결정된 후에도 전장을 떠나지 않고 '프랑스군'의 퇴각을 도왔으며
 이어서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서 항복권고도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때 연대장이었던 ‘캄브론누’ 장군은 <친위대는 죽을지언정 항복하지는 않는다(La Garde meurt mais ne se rend pas)> 라고 말을 하고는, 곧 이어서 <똥이나 싸라!(Merde!)>라고 말을 하면서 항복을 거부해서 모두 괴멸 당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캄브론누의 한마디> 또는 <5문자> 라고하면, 그 <똥이나 싸라!>라고 하는 의미라고 한다.


 
 **  캄브론누(Pierre Jacques Etienne Cambronne:1770년 12월 26일~1842년 1월 29일)

 프랑스혁명전쟁, 나폴레옹전쟁 기의 군인.
 지휘능력과 용모가 뛰어났고, 몸집이 컸다.
 나폴레옹과 함께 600명의 노친위대를 인솔해서 엘바 섬으로 건너갔다.
 나폴레옹 탈출 후에는 워털루 싸움에도 참가했으나 패배했고
 항복을 강요하던 영국군에게 <친위대는 죽을지언정 항복하지는 않는다>는 말과 함께
 라고 말을 하면서 거부했다.
 하지만 그로인해서 노친위대는 괴멸했지만, 그러나 그 자신은 유탄에 맞고서도 살아남았다.
 그는 의식을 잃은 후 포로가 되어서 영국으로 호송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그의 간호를 맡았던 영국인 여성과 결혼까지 하였다.
 그리고
또, 그 용기가 인정되어서 '루이18세'로부터 작위가 주어지기도 했다.








  
                                                     <12월 2일 오후 2시 상황도>




<아우스트리트 전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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