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生涯

 1.6  絶頂期

 그러자 '오스트리아'의 '프란츠1세' 軍은 북쪽으로 도망을 갔고, 그때 마침 오스트리아를 구원하러 왔던 '러시아'의
 '아렉산드르1세(앞에서 설명되었음)' 군과 합류했다.


 
 * 프란츠 1세(Franz II-1768년 2월 12일~1835년 3월 2일)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재위:1792년~1806년)이며
 오스트리아 제국 최초의 황제 프란츠1세(재위:1804년~1835년)이다.
 
아버지는 신성로마황제 레오포르트 2세. 어머니는 스페인 왕 카를로스 3세의 딸 마리아 르드비카.

 <생애>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왕제(王制)를 구하기 위해서 제1차 대불대동맹을 결성했고, 이어서 프랑스혁명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던 중 그는 폴란드의 분할에도 관여했지만(1795년) 그러나 그 후에 나폴레옹 전쟁에도 휘말려서 3제회전(아우스트리트 싸움)에서 참패했고, 그에 신성로마황제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그로인해 신성로마제국은 소멸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배영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왕국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제국’을 다시 형성했고.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1세’로서 군림했다. 그리고 또, 크레멘스 멧테르니히를 등용해서 '빈 회의'에서 잃었던 땅도 회복했다. 국가운영은 주로 멧테르니히 등 신하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는 검소한 생활을 좋아했고, 재위기간도 40년이란 긴 세월이었기 때문에, 만년은 국민으로부터도 우대받아 <선량한 황제 프란츠>라고 칭해졌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프랑스군'과 '오-러 연합군'이 '아우스트리트' 교외의 ‘프라트 고지’에서 격돌했던 바로 그날은 '나폴레옹'이 즉위한지 일주년이 되던 12월 2일이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세 명의 황제가 한 전쟁터에 모두 모였다고 해서 '3帝會戰'이라고도 불린다.



* 아우스트리트전투(영:Battle of Austerlitz-불:Bataille d'Austerlitz-독:Schlacht von Austerlitz)


 
                  <우측 백마-나폴레옹, 좌측 백마-아렉산들1세=현실적이지 못한, 일종의 상징도임>

 <개요>

 1805년 12월 2일, '오스트리아領'(현 체코) '모라비아'(영:Moravia-체코 동부)의 '브르노' 근교의 마을
 '아우스트리트'(현재의 스라후코후 우 브르나-Slavkov U Brna. 독:Austerlitz)교외에서
 '나폴레옹'이 인솔하던 '프랑스군'(대육군)이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물리쳤던 싸움이었다.
 


 그때의 '나폴레옹'의 지휘는 <마치 예술과도 같았다>라고 평가되었던 훌륭했던 승리였으며 '나폴레옹전쟁' 중에서 가장 눈부신 것이었다.

 '프랑스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1세'와 '신성로마제국(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제국이 되는 것은 1806년 이후)' 황제 '프란츠2세' 그리고 '러시아제국'의 황제 '아렉산드르1세' 그 3명의 황제가 참가했기 때문에 3제회전(영:Battle of the Three Emperors-독:Dreikaiserschlacht)이라고도 불린다.

 
덧붙여서, 그러나 실제로 '프란츠2세'는 그 전장의 현장에는 있지 않았다.

 -----------------------------------------------------------------------------------------------

 <배경>

 
1805년,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영국' 등과 '제3차 대불대동맹'을 결성하고 '바이에른'(Bayern-1918년 멸망. 현재 독일의 바이에른 주. 수도-뮌헨)을 침공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울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항복시키고 11월 13일 '빈'에 입성했다. 그러자 또 '프란츠2세'는 '모라비아'로 후퇴해서 '아렉산드르1세'와 '쿠토우조프'가 인솔하던 '러시아군'과 합류했다.



 
 * 쿠토우조프(또는 쿠투조프-러:МихаилИлларионовичГоленищев-Кутузов. 라:Mikhail Illarionovich Golenishchev-Kutuzov)

 1745년 9월 16일(율리우스력 9월 5일)-1813년 4월 28일(율리우스력 4월 16일)
 
제정 러시아시대의 군인.

 에카체리나2세, 파베르1세, 아렉산드르1세, 그 3대에 걸쳐서 재직했고,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했다. 그는
나폴레옹의 그늘에 가려져서 빛을 잃기도 했지만,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국민영웅으로 칭송되었다. (이하, 자세한 것은 생략)
 




그러자 '나폴레옹'도 '도나우(독:Donau-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2860km) 강'을 건너서
'모라비아'로 진출했고, '아우스트리트' 서방(西方)에 포진 했다.



<참고-도나우 강>

-----------------------------------------------------------------------------------------------


그것은 또 바로 그때, '
이탈리아 방면'에서는 아직도 '컬 대공'이 인솔하던 '오스트리아군'이
온전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폴레옹'으로서는 그 부대가 가담하기 전에
미리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의 주력을 꺾어둘 필요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 카를(칼)대공(Erzherzog Karl von sterreich, Herzog von Teschen)


 1771년 9월 5일 - 1847년 4월 30일
 프랑스혁명전쟁, 나폴레옹전쟁기에 활약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인, 황족. 테센 公.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황제 레오포르트2세와 황후 마리아 르드비카의 제3자.
 신성로마황제 프란츠2세(오스트리아 황제로서는 프란츠1세)의 동생.








 < 아우스트리트전투-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