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작: 나폴레옹의 대관식-황후가 되는 '죠제피누'에게 스스로 관을 하사하고 있는 '나폴레옹'>



  1 生涯

  1.5  皇帝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1804년 12월 2일에 즉위식을 거행해서 <프랑스인민의 황제>에 취임했다. (프랑스 제1제정)
 그러자 '프랑스'의 '영웅'이 독재(獨裁)적인 통치자가 되었다는 그 사건은,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 충격을 주었다.



 * 프랑스제국의 성립에 대한 배경 설명  (※ 뒤의 이야기는 차후로 미룸)


 1804년 '프랑스'의 '제1통령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반(反)혁명'을 두려워하고 '프랑스혁명'이 계속되기를 바라던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서 '프랑스 황제'에 등극했다.
 (다만 기권은 70% 이상)

 하지만 당시까지 '
나폴레옹 정권'은 '통령정부시대'부터 일관했던 정권이었고, 또 '나폴레옹'의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을 배경으로 했던 '군사(軍事)국가'였다. 그래서 그 '나폴레옹'이라는 존재와 함께, 그가 어떤 전쟁에서든 계속해서 이긴다는 것이 그 정권존속의 절대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영국'과 '오스트리아' 또는 프로이센(Pruisen)과 러시아 등, 이른바 '유럽 열강'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것은 단지 '나폴레옹'의 절대화와 권력강화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 혁명이 자국들에 미치는 공포에 더해서, 군사 면에서의 위협까지도 더해지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그 열강들은 조속히 '대불대동맹'을 결성하고는 그 제국에의 대항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프랑스' 국내에 있어서도 황제의 탄생에 의한 '프랑스 제국'의 출현은 '프랑스혁명'으로 '루이16세'를 처형했고, 또 '공화제'를 세웠던 것에 대해서 역행했던 것이어서, 친(親) 자코뱅파의 반발까지도 부르게 되었다.



 그 일례로, 그리고 또한 이미 세간에 잘 알려져 있듯이 '나폴레옹'을 '인민의 영웅'이라고 기대해서 <보나파르트> 라는 제목으로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예정으로 있었던 '교향곡 제3번'을 작곡 하고 있었던 'Beethoven'은, 그에 실망을 해서 '나폴레옹'에게 헌상할 생각이었던 '메시지'도 파기했고, 또한 곡명도 <영웅>으로 변경했다고 하는 일화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물론, 그리하여 '베토벤'은 당연히 '나폴레옹'에게의 곡 헌정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화가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설이 많다.


 * 교향곡 제3번 내림 마장조<英雄>



 작품 55 <원제(伊):Sinfonia eroica, composta per festeggiare il sovvenire d'un grand'uomo
영웅 교향곡-어떤 위대한 사람을 추억하며 바친다>

 위 작품은 '
Beethoven'이 작곡 했던 3번째의 교향곡으로, 1803~1804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또 '
영웅' 외에 '이탈리아어'의 원제에서 유래하는
 '영웅교향곡'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많이 있다
 'Beethoven'의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


< Eroica Beethoven title-3번 영웅 >

<베토벤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으므로 설명을 생략함>

            

 

 그리고 또 그 대관식에는 ‘교황 피우스7세'(앞에서 설명되었음)도 초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나폴레옹'의 계산에 의했던 것으로
 그것은 또 당시,

교황으로부터 왕관을 하사받는 것은 의례적인 것이었다고는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때 '나폴레옹'은 교황의 눈앞에서 스스로 왕관을 쓰는 것으로 해서
 교회를 정치의 지배하에 두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어서,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 후 '나폴레옹'은 '각료'나 '대신'에 많은 정치가, 관료, 학자 등을 등용했고
 그러나 자신이 군인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국방대신'만 군인으로 등용했다.



 

 

 

 

 

 

 


 




< Napoléon Bonaparte - 1.5  皇帝 나폴레옹-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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