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노동에세이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들에겐 결코 감정을 숨기는 법을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개의 꼬리는 감정 상태를 그대로 표시해주는 계기판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멀리서 다가오면 개는 벌떡 일어나 꼬리를 세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만약 사람이 스무 발자국 떨어져있을 때의 꼬리가 이슬비 내리는 날의 와이퍼 같다면, 두세 발자국 떨어져 있을 때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같다. 이때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개에게 다시 다가가 소시지라도 하나 먹이면 제자리에서 회오리바람이라도 일으킬 것처럼돈다. 그러지 않고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버리면 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주저앉아 버린다. - P327

자신의 죽음을 방관하는 동물도 없고 손쉽고 간편한 죽음 같은 것도없다. 동물을 죽이려면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하는 그들의 품속에서 목숨이라는 것을 폭력을 써서 빼앗아야 한다. 내가 금산의 양계장에서본 것처럼 비참한 삶을 사는 동물일지라도 자신의 생명이 멈추는 걸막기 위해서라면 미친 듯이 저항할 것이다. 바로 그 비참한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동물이 품고 있는 생명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동물의 목숨을 빼앗을 때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도태시켰던 모든 돼지들의 죽음뒤에는 살이 빨리 찌지 않는다는 아주 사소한 이유만이 존재했다. - P437

선량한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선량함을 의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된다.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개농장을 나아가 공장식 농장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 역시
‘의심하지 않음‘이 아닌가 싶다. 누구도 동물들을 그토록 비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기르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동물의 부리나 이빨을 자르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인지 의심해보지않았다. 누구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동물을 굶기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갓 태어난 동물을 쓸모없다는 이유로폐기 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20년을 살 수 있는 동물을 한 달 만에 죽이는 것이 지나친 일이 아닌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살이 빨리 찌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맛을 위해 동물의장기를 마취도 하지 않고 뜯어내는 것이 필요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동물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가둬놓고 임신과 출산만을반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동물에게 음식 쓰레기를 먹이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목을 매달고 감전시켜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 - P445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전통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효율성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이윤 추구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해보지 않는 존재는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시스템이든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다. - P446

"그래도 이놈은 걸을 줄 알아 다행이네. 하긴 지난번에 끄집어낼 때걸어봤으니까."
"개가 걸을 줄을 몰라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땅을 밟아본 적이 있어야지. 평생 철창 위에서만 살았잖아."
"케이지 안에서 잘 걸어 다니잖아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철창이랑 땅바닥이랑 밟고 서 있는 느낌이다르잖아? 그러니까 땅을 처음 밟아본 개는 그 느낌이 낯설어서 겁먹고 꼼짝도 못 하는 거야." - P4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