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노동에세이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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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거리는 놈들은 냉장고 집어넣을 때 다 죽여서 넣어야 해. 안그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임스 본드가 하는 식으로 뒤에서목을 잡고 비틀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다음엔 손가락으로 숨을막았다. 병아리들은 다리를 몸 위로 끌어 올려 어설프게 날카로운 발럼 그 안에서 막 돌아다니니까."
톱으로 손을 긁어댔다. 손을 풀 수밖에 없었다. 아파서는 아니었다. 그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만 한 병아리가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그 느낌을, 비천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들의 저항이때로는 효과를 거두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저항은 피부가 아니라 양심에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 P100

병아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용케 지금까지 나나 사장의 눈을 피해 살아남은 아주 작은 녀석이었다. 탈장 증세가 있어서 5cm 길이의 보라색 내장이 항문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내장이 빛을 받아번들거렸다. 반짝이거나 흔들거리는 물체는 닭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때문에 이런 녀석은 쉽게 공격 대상이 된다. 몸집이 두 배 정도인 병아리 두 마리가 이 녀석의 엉덩이에 달라붙어 내장을 쪼았다. 그때마다이 ‘못난이‘는 감전당한 것처럼 움찔거렸다. 맞서 싸운다거나 멀리 도망을 치지도 못했다. 그저 한두 발짝 옮겨갈 뿐이었다. 병아리는 출입문 근처에서 계사의 가로 변을 따라 걸었다. 못난이를 공격하던 두 놈은 몇 발자국 따라가다 돌아섰다. 하지만 곧바로 그 주위에 있던 다른병아리들이 못난이의 엉덩이에 다시 달라붙어 내장을 쪼았다. 그런 상황은 못난이가 벽에 다다를 때까지 반복됐다. 나는 그 병아리의 얼굴을 봤다. 내 느낌일 뿐이지만 그냥 포기한 얼굴 같았다.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고행승마냥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한 표정 같았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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